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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항은 정유재란 때 왜군에 잡혀간 선비다. 왜인이 탄복할 정도로 경학을 줄줄 뀄다. 그를 찾아온 일본 지식인들. 선승 순수좌(蕣首座)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에도시대 최고의 유학자로 이름을 떨친 후지와라 세이카다. 강항이 남긴 ‘간양록(看羊錄)’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강항이 물었다. “일본인은 죽기를 좋아하고 살기를 싫어하는 거요?” 툭하면 할복하는 풍토를 지적한 말이다. 돌아온 대답. “한번 담보 없는 놈이라는 이름이 나면 어디를 가나 퇴박맞기 때문입니다.” 권모술수가 판친 막부정치. 하지만 평판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러니 목숨을 끊어 충성과 결백을 확인시키는 것 아니겠는가. 후대를 위해 자신을 버리는 행동인 듯하다.

일본에는 물건에 이름 새기는 버릇이 있었다. 성호 이익이 남긴 글. “중국이든 일본이든 기물에 만든 자의 이름을 새긴다. 성의를 되새기게 하고, 잘못을 벌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지금 중국은 다르다. 역사 풍파를 많이 겪은 탓인지 그런 유습은 퇴색했다. 일본은 다르다. 지금도 물건마다 만든 이의 이름을 새긴다.

강항과 이익의 말에 담긴 공통분모는 무엇일까. 신용이다. 일본이라고 어찌 사기협잡꾼이 없을까. 일본 정치인의 거짓말은 우리 못지않다. 하지만 사회 밑바탕에 깔린 믿음의 뿌리는 얕은 것 같지 않다.

부러운 것 한 가지가 또 생겼다. 일본열도가 모자란 일손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면 기업에서 바로 낚아채 간다고 한다. 청년백수가 쏟아지는 우리와는 딴 세상이다. 왜 그런 현상이 빚어지는 걸까. 고령화 때문일까. 그것만 이유인 것 같지 않다. 실업자가 많던 2012년 이전에도 일본은 초고령사회였다. 구인난은 아베노믹스의 성공을 배경으로 한다. 살아난 일본 경제. 기업에 일손이 모자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정규직의 임금을 올리고,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노동개혁은 아베노믹스의 선순환을 뜻하는 걸까.

우리는? 상대의 말이라면 귀를 막고 ‘거짓말’로 몰아붙인다. 작은 믿음이 움틀 여지도 없다. 그런 풍토에서 어찌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을까. 아베노믹스? 한국에서라면 성공했을까.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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