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옆으로 뭉턱뭉턱 노을이 지는 강물이 흐르고…
존재하지 않는 소녀와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혼자 남을 그녀가 안쓰러워 휘파람을 불며 걷고있습니다.
어, 저기 강에서 언덕바지로 오르는 계단 위 통나무 집,
그 뒤꼍에서 낯익은 속옷들이 펄럭이네요.
다시 책상 위로 홍시 하나가 뚝하고 떨어져
먼저 떨어진 놈 옆 앉아
땀을 흘리며 계단을 오르는 나를 바라보고 히브죽이 웃네요.
환지통은 팔다리를 절단한 환자가 이미 없는 수족에 아픔과 저림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이 시를 쓴 윤석산 시인은 몇 년 전 큰 뇌수술을 받은 적 있는데 아마 그 휴유증으로 환지통에 시달렸지 않나 싶다. 시인의 열정과 소신에 찬 활동을 평소에 지켜봐온 이들에겐 뜻밖의 소식이다.
김영남 시인 |
인용시는 작자가 뇌수술과 목수술로 목소리를 잃어버렸는데 환지통처럼 없어진 것으로 인해 환상에 시달린다. 자아분열상이 심해 보이는 풍경마다 허상이 존재하고 거기에 2중의 내가 방황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의 새 시집을 다 읽고 나니 고저 강단이 분명했고, 쩌렁쩌렁했던 시인의 목소리가 새삼 그리워진다.
김영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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