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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의세계,세계인] 중국의 농민공 모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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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03 21:39:36 수정 : 2017-04-11 17:5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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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정부, 농촌출신 기술자 유치 팔 걷어
도시집중 노동력 지역발전 동력으로 활용
중국의 가장 큰 명절인 춘절(春節). 우리의 구정인 새해맞이 명절이다. 매년 귀향하려는 사람으로 세계 최대 인구이동이 발생한다. 올해 춘절기간 이동 인구는 29억명에 달했다. 그런데 ‘귀향전쟁’ 속 유독 밝은 표정의 사람들이 있다. 안후이(安徽)성 푸양(阜)시 출신의 농민공(農民工)들이다. 푸양시가 이들을 위해 동부의 저장(浙江)성까지 전용열차를 보내주었다. 열차가 고향역에 도착하자 봉사자들이 짐을 버스로 옮기고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모든 비용은 시에서 부담했다.

최근 중국의 지방정부가 지역 출신 농민공 모시기에 나선 것이다. 일부 중국 언론은 ‘쟁탈전’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상하이와 베이징에서는 ‘농민공 전용기’가 이륙하기도 했다. 장정(張政) 첸시난(黔西南)주 당서기가 귀향하는 주민에게 제공한 항공편이었다. 지역 출신 탑승 농민공은 운임의 20%만 지불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농민공이 고향에 머무르는 동안 지방정부가 후원하는 수백개의 기업 채용설명회가 열렸다.

농민공은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일하는 중국의 빈곤층 노동자를 일컫는다. 모든 중국인은 출생지에 따라 농민과 도시민 중 하나의 호적을 갖는다.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1958년 공포된 ‘호구(戶口) 등기조례’ 때문이다. 당시의 식량부족 사태를 고려해 자유로운 이동을 금지한 것이다. 그러나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정책을 발표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도시를 중심으로 공업화가 시작되면서 값싼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농민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쏟아져 들어왔다.

산업화를 위해 중국 정부도 1992년 도시의 식량배급표(粮票) 제도를 없앴다. 농민의 도시 내 거주와 취업이 합법화되지는 않았지만 가능해진 것이다. 인구의 도시집중화는 더욱 심화됐다. 이때부터 농민공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그러나 도시민 호적이 주어지지는 않았다. 의료, 교육 등의 혜택이 제한됐다. 농민공의 평균임금도 호적상의 제약으로 도시 노동자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쳤다. 이런 농민공의 희생으로 중국 상품이 세계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2016년 통계에 따르면 중국 전역의 농민공 수는 2억8171만명이다.

임금 착취 및 체불, 자녀교육 공백, 슬럼화 등 수십년 동안 농민공에 대한 처우는 중국의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였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고 있다. 세계경기 침체, 대기오염 등으로 도시 내 공업화가 한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지역 균형발전 전략의 틀 속에서 내륙을 중심으로 한 산업화는 속도를 내고 있다. 지방 정부와 기업은 도시에서 기술을 배운 지역 출신 농민공의 노동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중국 정부도 도시집중 인구를 다시 지역발전의 동력으로 이용해 국가경제 성장을 이어나가는 데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결국 인구의 도시 집중화를 막는 방안은 지역 균형발전이다. 행정기관 지방이전 등 우리도 인구의 도시밀집현상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먹거리’가 될 수 있는 산업의 균형적인 분포가 더 중요하다. 우리도 중장기적 지역 균형발전 전략을 재설정할 시점이다.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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