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달 동안 우리는 속았다는 생각에 속상해하면서 밤잠을 설쳤다. 어눌하고 투박한 말투였지만 우아하고 단정한 자태에 홀렸다는 느낌도 들었다. 다시는 다음 대통령에게 속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정승욱 선임기자 |
이들이 박 전 대통령에게 사태 전개에 관해 있는 그대로 ‘간언’했을까. 청와대 행정관 출신의 한 인사는 “고집 센 박 전 대통령에게 간언하는 것은 쇠귀에 경 읽기”라고 했다. 그렇다 해도 검사 앞에서 자신의 조서를 7시간여 꼼꼼히 챙길 정도의 집중력이나, 영장 판사 앞에서 8시간여 반박할 정도의 식견 소유자라면 눈물어린 간언쯤은 알아들었을 것이다. 이른바 측근들이 보통 시민의 상식적 품성을 지닌 사람들이었다면 지금 같은 비극적 사태를 초래했을까. 상식적 품성이란 책임질 줄 알고, 분수를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 지닌 품격과 성정을 이른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박 전 대통령을 보좌한 무리들은 후안무치한 인사들이다. 사회 최상층부에 똬리를 틀고 있는 기득권층이다. 개인의 영달이나 조직의 이익을 지키는 데 혈안이 된 부류들이다. 기득권 내려놓기가 어려운 그들은 대통령 눈을 멀게 하고 상황을 호도했다.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놓고 혈세 따먹기 경쟁을 벌였다. ‘회전문 인사’나 ‘그 나물에 그 밥’이 딱 맞아떨어지는 말이다.
그들은 한마디로 권력을 가진 소수 집단이다. 헌법 질서나 민주주의 같은 상식적 개념하고는 거리가 먼 인사들이다. 헌정 이후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기득권 집단에 나라 운명을 내맡겨왔다. 그러나 권력자 주변에 왔다 갔다 하는 한 줌도 안 되는 기득권 부류에 우리는 무지했다.
사실 대통령 임기 5년간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제아무리 훌륭한 청사진을 내놔도, 법과 제도를 정비해도 결국 사람이 움직인다. 그 많은 일을 다 할 순 없다. 청와대와 국회를 차지한 극소수 인사들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후보의 측근 인사들을 차분히 살펴보자. 후보의 공약이나 연설을 보면 구분이 쉽지 않지만, 보좌하는 참모들을 보면 그런대로 식별이 가능하다.
“나를 보좌하는 인사들은 이런 사람으로 채우겠다, 이런 사람을 발탁하겠다”고 약속하는 후보를 고른다면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신문 방송 등에선 정책을 보라고 훈수하지만 번지르르한 말로 포장한 ‘속빈 강정’이 많다. 막말하는 이들이나 죽기살기식 싸움꾼들은 일단 제외하자. 그들 역시 이익을 지키려고 죽기살기로 발버둥칠 것이기 때문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