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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문학기행] 특별하지 않아도 빛나지는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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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07 01:12:09 수정 : 2017-04-11 18: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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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감옥서 받은 한 송이 민들레의 힘 / 찬란한 봄을 피어낸 그 빛을 본받고 싶어
언제부턴가 ‘셀러브리티’라는 외래어가 미디어에 오르내리면서, ‘유명인’이라는 본래 단어의 자리를 위협하게 됐다. 뜻은 비슷해도 단어의 뉘앙스는 달라서, ‘유명인’이라고 하는 것보다 ‘셀러브리티’라고 하면 왠지 좀 더 화려하고 주목받는 느낌을 주게 돼 버렸다. 사람들은 ‘셀러브리티’와 ‘일반인’이라는 구별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으며, 유명인의 시시콜콜한 사생활, 공항패션과 헤어스타일은 연일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며 마치 그것이 ‘오늘의 급박한 뉴스들’과 비슷한 중요도를 지닌 것처럼 취급받는다. 셀러브리티의 시대로 접어들며 유명인의 일거수일투족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은 무엇일까.

우리는 시각적 이미지에 현혹돼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분명히 빛나는 것들’을 바라보는 감각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박노해의 시 ‘민들레처럼’을 읽다가 ‘그래, 우리는 이런 감수성을 잃어버렸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불온한 혁명가’로 낙인찍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당시, 감옥에서 단식투쟁을 하고 고문까지 견디며 파란 수의에 검정고무신을 신고 끌려가고 있던 시인에게 누군가가 민들레 한 송이를 쥐어 주었다고 한다. “굴비처럼 줄줄이 엮인 수인들 사이에서/“박노해씨 힘내십시오”/어느 도적놈인지 조직폭력배인지/노란 민들레꽃 한 송이/묶인 내 손에 살짝이 쥐어주며/환한 꽃인사로 스쳐갑니다.” 포승줄에 묶인 시인의 손에 들린 노란 민들레는 감옥에 갇힌 시인에게 뜻밖의 자유를 선사한다. “철커덩, 어둑한 감치방에 넣어져/볼에도 대어보고 코에도 대어보고/눈에도 입에도 맞춰보며 흠흠/꽃 한 송이로 번져오는 생명의 향기에 취해/아-산다는 것은 정녕 아름다운 것이야.”

정여울 작가
그토록 절망적인 상황에서 시인은 노란 민들레 한 송이의 힘으로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권리’를 되찾은 것이다. 그는 꽃 한 송이 몰래 품고 와 시인의 손에 쥐어준 그분의 속뜻을 되새기다가, 이런 결론에 다다른다. “민들레처럼 살아야 합니다/특별하지 않아도 빛나지는 않아도/흔하고 너른 들풀과 어우러져/모두 다 봄의 주체로 서로를 빛나게 하는/민들레의 소박함으로 살아야겠습니다(…)논두렁이건 뚝방이건 아스팔트건/폐유에 절은 공장 화단 모퉁이까지/그 어느 험난한 생존의 땅에서건/끈질긴 생명력으로 당당하게 피어나는/민들레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야겠습니다.” 민들레의 강인함은 화려하게 꾸미지 않는 정직함, 귀한 자리 천한 자리를 가리지 않는 공명정대함이 아닐까. “자신에게 단 한 번 주어진 시절/자신이 아니면 꽃피울 수 없는 그 자리에/거침없이 피어나 정직하게 피어나/온몸으로 부딪치며 봄을 부르는/민들레의 치열함으로 살아야겠습니다(…)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우리는/기꺼이 밟히고 깨지고 또 일어서며/피를 말리고 살을 말려 봄을 진군하다가/마침내 바람 찬 허공에 수천 수백의 꽃씨로/장렬하게 산화하는 아 민들레 민들레/그 민들레의 투혼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내면의 빛을 생각하는 시간. 감옥의 구석진 자리에서도 찬란한 봄을 피워낸 민들레의 빛을 본받고 싶어진다. 특별하지 않아도 빛나지는 않아도, 나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시절, 내가 지닌 힘으로 피워 올릴 나만의 빛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에 안고서.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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