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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현기자의역사항쟁지다시보기] 김규면 독립혼 잠든 러 노보데비치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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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07 01:14:28 수정 : 2017-04-11 18: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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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크바 노보데비치수도원에는 러시아의 역사적인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이곳은 1524년 바실리3세가 모스크바와 스몰렌스크의 연합을 기념하기 위해 건설했다. 수도원에는 러시아 문학의 거성 니콜라이 고골리와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안톤 체호프가 묻힌 이후 본격적인 묘지로 조성됐다. 소련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와 제2차대전 때 외무장관인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 등도 이곳에 잠들어 있다.

러시아 모스크바 노보데비치수도원 묘지에는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김규면(백추)과 부인 김나쟈가 잠들어 있다.
독립기념관 제공
우리나라 독립운동가인 김규면(1880~1969·호 백추)은 1967년 러시아혁명 50주년에 러시아정부로부터 적기훈장을 받은 공로로 이곳에 안장됐다. 함경북도 경흥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 배재학당을 졸업하고, 1907년 신민회에 가입했다. 국권피탈 후에는 기독교에 입교하여 목사가 되었다. 1913년 조선총독부의 포교규칙을 승인하는 외국 선교사들의 방침에 저항했다. 1919년 3·1운동 후 만주에서 대한신민단을 조직하여 활동하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해 한인사회당 결성을 주도했다. 1921년 러시아 마사노프에서 대한의용군 전한군사위원회 결성에 참여하여 코민테른 자금 4만원을 받아 대한의용군 편제 및 보급에 사용했다. 다음해 노령(露嶺)의 조선인 무장부대가 고려혁명군으로 통합될 때 참모부원으로 활동했다. 연해주해방전투에서는 러시아 적군과 연계하여 한인연합부대 군사위원으로 참전했다. 1923년에는 중국 국민혁명에 참여했으며, 1924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차장 및 교통총장대리에 선임됐다. 1927년 장제스의 반공쿠데타로 국민혁명이 좌절되자 연해주로 돌아와 활동했다.

김규면과 그의 부인 김나쟈(1887~1973)는 노보데비치 벽면묘지 제131구역에 잠들어 있다. 묘지 덮개 위쪽에는 부부의 사진이 붙어 있다. 중앙부분에는 러시아어로 “극동에서 소비에트 권력을 위한 투쟁에 참가한 김백추”라고 쓰여 있으며, 그 밑에 한글로 김백추라고 새겨져 있다.

류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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