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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스포츠] “엄마 리더십 상징 됐지만 선수에겐 늘 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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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13 06:00:00 수정 : 2017-04-12 23: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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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사령탑 첫 프로배구 정규리그 우승 이끈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 “당연히 아쉽죠. 최초 통합우승 여성 감독이면 더 좋았을 텐데요.”

여자 프로배구 박미희(54) 흥국생명 감독은 2016~2017 V리그 통합 챔프를 아쉽게 놓친 것을 두고 이같이 곱씹었다. 흥국생명을 3년째 이끈 박 감독은 올 시즌 여성 지도자로는 최초로 정규리그 우승 감독에 이름을 올렸지만 챔프전에서 IBK기업은행에 1승3패로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코트 위에서 선수들을 윽박지르는 남성 감독 위주의 스포츠 판에서 실수를 엄마처럼 따뜻하게 감싸주는 박 감독의 리더십은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다.

한국 프로스포츠에서 여자 감독 첫 정규리그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운 여자배구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이 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배구공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남제현 기자
지난 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 감독은 “어떤 리더십이든 방법이 다를 뿐이지 정답은 없다. 흥국생명 선수들이 어린 편이라 강하게 몰아붙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소신을 밝혔다. 챔프전 당시 선수들을 거세게 다그친 기업은행 이정철(57) 감독의 리더십과 비교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박 감독은 이어 “승부의 세계는 1등만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수들이 코트 위에서 한결 여유로워지고 범실에 쉽게 당황하지 않는 모습을 봤다. 선수들의 정신력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게 정규리그 우승 프리미엄이라고 본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박 감독 이전의 한국 프로스포츠 여성 사령탑의 역사는 암흑기였다. 최근 여자 프로배구 현대건설 신임 감독에 오른 이도희(49) 전 해설위원을 포함해 프로배구 여성 감독은 단 3명뿐이다. 박 감독 역시 어렵사리 ‘금녀의 벽’을 뚫고 역대 두 번째로 프로배구 여성감독이 됐지만 이전 사례가 썩 좋지 않아 부담이 많았다. 그러나 박 감독이 성공 가도를 걸으면서 2017~2018 시즌엔 여성 감독 두 명이 같은 리그에서 승부를 겨루는 진풍경이 펼쳐지게 됐다.

이 감독은 구단과 계약을 한 뒤 곧바로 선배 박 감독을 찾을 정도로 서로 의지하는 사이다. 박 감독은 “이 감독이 계약 도장을 찍고 바로 전화를 하더라. 나 덕분에 감독이 된 것 같다고 하길래 농담으로 연봉 10%를 떼어 달라고 했다”며 “이 감독이 잘하면 여성 감독이 앞으로 더 나올 수 있다. 여성 감독도 한 사람의 지도자이지 성별이 다를 뿐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실 박 감독은 2014~2015 시즌 처음으로 팀을 맡았을 때만 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본의 아니게 위축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배구판의 유일한 여성 감독으로 경기를 이기는 날에는 “여성 감독에게 졌다”며 고까운 시선으로 보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남성 감독끼리 서로 술잔을 기울이며 유대를 돈독히 할 때마다 여성 감독으로서 드는 소외감도 있었다. 이 때문에 박 감독은 올 시즌 정규리그 우승 당시와 챔프전에서 유독 눈시울이 자주 붉어졌다. 고난과 편견을 이겨낸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서다.

현역 시절 ‘코트의 여우’라 불리며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이름을 떨친 박 감독은 2013~2014 시즌 최하위에 머물렀던 흥국생명을 무시무시한 ‘거미 군단’으로 키워냈다. 박 감독의 선수 시절 포지션은 센터지만 당시엔 리베로 포지션이 없어 센터가 수비와 공격을 도맡아야 했다. 이 같은 경험은 다양한 포지션의 선수들을 두루 지도할 수 있었던 자산이 됐다. 박 감독의 지도력에 힘입어 올 시즌 여자 프로배구 ‘베스트 7’에는 레프트 이재영(21), 세터 조송화(24), 센터 김수지(31), 리베로 한지현(23) 등 흥국생명 선수 4명만이 이름을 올렸다.

박 감독은 “실력 향상은 선수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감독의 역할은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가 배구를 재미있는 운동으로 인식하게끔 만드는 것”이라며 “프로배구 선수가 되려면 치열한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선수들 모두에게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자존감을 높일 수 있도록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슬하에 1남1녀를 뒀다. 특히 딸은 팀 세터 조송화와 나이가 같아 제 또래 선수들의 경기를 더 유심히 본다고 한다. “자식 농사와 선수 지도 중 어느 것이 더 힘드냐”는 질문에 박 감독은 “당연히 배구 감독이 더 힘들다. 자식은 회초리라도 들 수 있는데 선수들은 그렇게 못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이어 “엄마 리더십의 대명사가 됐지만 사실 선수들에게 충분히 엄한 편이다. 연습할 때 특히 선수들을 많이 혼내기도 한다”며 “챔프전 패인은 얇은 선수층에 있었다고 본다. 비시즌 기간 동안 주전과 백업 간의 실력 차를 줄여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담금질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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