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프로배구 박미희(54) 흥국생명 감독은 2016~2017 V리그 통합 챔프를 아쉽게 놓친 것을 두고 이같이 곱씹었다. 흥국생명을 3년째 이끈 박 감독은 올 시즌 여성 지도자로는 최초로 정규리그 우승 감독에 이름을 올렸지만 챔프전에서 IBK기업은행에 1승3패로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코트 위에서 선수들을 윽박지르는 남성 감독 위주의 스포츠 판에서 실수를 엄마처럼 따뜻하게 감싸주는 박 감독의 리더십은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다.
한국 프로스포츠에서 여자 감독 첫 정규리그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운 여자배구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이 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배구공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남제현 기자 |
박 감독 이전의 한국 프로스포츠 여성 사령탑의 역사는 암흑기였다. 최근 여자 프로배구 현대건설 신임 감독에 오른 이도희(49) 전 해설위원을 포함해 프로배구 여성 감독은 단 3명뿐이다. 박 감독 역시 어렵사리 ‘금녀의 벽’을 뚫고 역대 두 번째로 프로배구 여성감독이 됐지만 이전 사례가 썩 좋지 않아 부담이 많았다. 그러나 박 감독이 성공 가도를 걸으면서 2017~2018 시즌엔 여성 감독 두 명이 같은 리그에서 승부를 겨루는 진풍경이 펼쳐지게 됐다.
이 감독은 구단과 계약을 한 뒤 곧바로 선배 박 감독을 찾을 정도로 서로 의지하는 사이다. 박 감독은 “이 감독이 계약 도장을 찍고 바로 전화를 하더라. 나 덕분에 감독이 된 것 같다고 하길래 농담으로 연봉 10%를 떼어 달라고 했다”며 “이 감독이 잘하면 여성 감독이 앞으로 더 나올 수 있다. 여성 감독도 한 사람의 지도자이지 성별이 다를 뿐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현역 시절 ‘코트의 여우’라 불리며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이름을 떨친 박 감독은 2013~2014 시즌 최하위에 머물렀던 흥국생명을 무시무시한 ‘거미 군단’으로 키워냈다. 박 감독의 선수 시절 포지션은 센터지만 당시엔 리베로 포지션이 없어 센터가 수비와 공격을 도맡아야 했다. 이 같은 경험은 다양한 포지션의 선수들을 두루 지도할 수 있었던 자산이 됐다. 박 감독의 지도력에 힘입어 올 시즌 여자 프로배구 ‘베스트 7’에는 레프트 이재영(21), 세터 조송화(24), 센터 김수지(31), 리베로 한지현(23) 등 흥국생명 선수 4명만이 이름을 올렸다.
박 감독은 “실력 향상은 선수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감독의 역할은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가 배구를 재미있는 운동으로 인식하게끔 만드는 것”이라며 “프로배구 선수가 되려면 치열한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선수들 모두에게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자존감을 높일 수 있도록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슬하에 1남1녀를 뒀다. 특히 딸은 팀 세터 조송화와 나이가 같아 제 또래 선수들의 경기를 더 유심히 본다고 한다. “자식 농사와 선수 지도 중 어느 것이 더 힘드냐”는 질문에 박 감독은 “당연히 배구 감독이 더 힘들다. 자식은 회초리라도 들 수 있는데 선수들은 그렇게 못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이어 “엄마 리더십의 대명사가 됐지만 사실 선수들에게 충분히 엄한 편이다. 연습할 때 특히 선수들을 많이 혼내기도 한다”며 “챔프전 패인은 얇은 선수층에 있었다고 본다. 비시즌 기간 동안 주전과 백업 간의 실력 차를 줄여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담금질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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