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미켈란젤로는 왜 교황에게 와인을 바쳤나

관련이슈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 디지털기획

입력 : 2017-04-14 06:00:00 수정 : 2017-04-13 16:12:5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12세기 미켈란젤로의 와이너리 니따르디에서의 하룻밤

스마트폰 알람은 필요없다. 새들의 지저귐,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따사로운 봄햇살이 살포시 아침 잠을 깨운다. 밤새 거실을 데운 벽난로에서 아직 땔감이 따뜻한 온기를 내뿜고 고풍스런 나무 창문을 열면 햇볕을 머금은 부드러운 바람이 몸을 감싼다. 

오랜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돌벽으로 지어진 니따르디 건물 전경

눈앞에 펼쳐지는 드넓은 포도밭. 어디선가 날아오는 라벤더 등 각종 허브와 꽃향. 그리고 그속에 은밀하게 섞여있는 잘 숙성된 와인 냄새. 700년이 넘은 고색창연한 와이너리에서 하루밤을 보내면 어느새 중세시대의 풍경속으로 들어와 있다.

니따르디 안내 표지판

 

니따르디 와이너리 입구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남쪽으로 4시간30분을 승용차로 달리면 투스카나주의 피렌체와 시에나에 걸쳐있는 유명한 와인산지 끼안띠 클라시코의 언덕이 나타난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며 숲속으로 30분가량 더 깊숙히 들어가자 한눈에도 오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색바랜 벽돌 건물이 눈앞에 서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가이자 건축가 미켈란젤로가 오랫동안 소유했던 와이너리 패토리아 니따르디(Fattoria Nittardi)다. 와이너리 곳곳에 놓인 조각품들과 그림이 걸린 거실, 뒤뜰을 거닐다 보면 어디선가 미켈란젤로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니따르디의 역사는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수도사들이 만든 와이너리인데 르네상스시대에 교회와 성당의 벽화를 그려주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미켈란젤로가 1549년 니따르디를 사들였다고 한다. 그후 미켈란젤로와 가문은 이를 250년동안 소유하며 와인을 빚었다. 와이너리 이름 니따르디는 1183년에 이곳에 세워진 방어용 감시탑 ‘넥타르 데이(Nectar Dei)’에 유래됐다. 이는 ‘신의 과일즙(The Nectar of the God)’이란 뜻이니 와이너리 이름으로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을까.

니따르니 와이너리 곳곳에 놓인 조각작품들

미켈란젤로가 와이너리를 매입한 시기는 유명한 로마의 시스티나 성당 벽화를 그리던 때였는데 와이너리를 소유하게되면서 당시 교황 울리우스 2세에게 와인을 바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전통은 지금도 이어져 니따르디에서 매년 첫번째로 병입한 ‘넥타르 데이’ 6병이 교황에게 보내지고 있다. 이 와인은 니따르디가 1999년 새로 매입한 투스카나 남부 해안 마렘마(Maremma)에서 빚는 ‘수퍼 투스칸’ 와인으로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등 국제품종을 중심으로 만든 니따르디의 최상급 와인이다.

니따르디는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1980년대 전까지 맛은 그리 뛰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니따르디 와인의 품질을 혁신적으로 끌어 올린 이가 현재 소유주인 피터 펨퍼트(Peter Femfert) 부부와 아들 레옹(Leon)이다. 독일에서 유명화랑 디 갤러리(Die Galerie)를 운영하는 피터는 미켈란젤로 가문이후 피렌체 출신의 다른 가문으로 인수됐던 니따르디를 1981년 인수, 오래된 와인 숙성고를 현대식 셀러로 바꾸며 와이너리를 하나씩 다시 일궜다. 포도나무를 더 촘촘하게 심는 스트레스 농법과 가지치기로 한그루의 생산량을 대폭 줄여 포도의 응집력을 끌어 올렸다. 또 피사대학에서 양조학을 전공한 와인메이커 안토니오 스푸리오(Antonio Spurio)가 2004년 부터 합류해 최고의 밸류 와인을 빚고 있다.

고풍스러운 니따르니 방문객 숙소 거실 전경
아트 갤러리스트와 미켈란젤로가 소유했던 와이너리의 만남도 궁극의 마리아주다. 독일에 활동하며 이탈리아를 오가던 피터는 베니스 출신 아내 스테파니아 카나리(Stefania Canali)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피터는 “투스카니에 정착하길 원했던 아내를 위해 와이너리를 찾던 끝에 미켈란젤로가 소유했던 와이너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눈에 번쩍 띄었지요. 그림을 사랑하는 아트 갤러리스트로서 이보다 더 운명적인 만남이 있을까요.”  

니따르디 오너 피터 펨퍼트(Peter Femfert 오른쪽)와 아들 레옹(Leon)
피터는 미켈란젤로가 소유주이던 니따르디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와인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와인이 까사누오바 디 니따르디(Casanuova di Nittardi)다. 최고급 밭인 싱글빈야드 비냐 도게샤(Vigna Doghessa)에서 자라는 이탈리아 대표 토착품종 산지오베제 품종으로 빚는 이 와인의 레이블과 포장지 그림 작업에 매년 전세계의 유명한 아티스티들이 참여한다. 까사누오바는 ‘새집’이라는 뜻으로 미켈란젤로가 16세기 와이너리를 인수한 것을 기리기 위해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피터와 김창렬 화백
김창열 화백이 그린의 까사누오바 디 니따르디(Casanuova di Nittardi) 2011
니따르디는 선정된 작가들이 와이너리에서 2∼3주동안 머물게 하면서 와인을 맛보고 와이너리를 둘러보며 빈티지를 깊게 이해하는 충분한 시간을 갖도록 한다. 작가들은 그해의 와인을 나름대로 해석해 와인병 레이블과 포장지에 담을 작품을 그려낸다. 타계한 전설적인 록 그룹 비틀즈 멤버 존 레논의 부인인 설치미술가이자 가수 오노 요코(2005년산), 한국의 물방울 화가 김창렬 화백(2011년산), 추상 표현주의의 거장 작가 칼 오토 고츠(2012년산) 등 1981년부터 현재까지 34명의 작가들이 작업에 참여해 작품 68점을 남겼다. 이 작품들은 니따르디 와이너리에 전시돼 있다.

니따리디의 올리브 오일을 들고 포즈를 취한 오노 요코
오노 요코가 그린 까사누오바 디 니따르디(Casanuova di Nittardi) 2005
보수는 따로 없고 작가들은 자신이 그림 작품이 담긴 까사누오바 디 니따르디 와인 120병을 선물로 받는다. 오노 요코는 와인 대신에 올리브를 요청해 매년 새빈티지의 올리브 오일을 보내준다고 한다. 오노의 작품에는 ‘이매진유(IMAGINEYOU)’라는 글귀가 적혀있는데 이는 존 레논을 기린 것으로 보인다. ‘Imagine’은 존 레논이 1971년 발표한 싱글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빌보트 차트 1위에 올랐다. 2015년 빈티지는 올 가을 출시될 예정인데 영국의 아티스트가 참여했다고 한다. 피터는 “잠깐 반짝하고 사라지는 아티스트 보다 니따르디의 역사처럼 오랜 세월 지속적인 관심을 받고 작품성을 인정받은 아티스트를 위주로 선정하고 있어요”라고 귀띔했다.

프랑스 브루고뉴의 디종에서 양조학을 공부하고 칠레 라포스텔과 나파밸리, 부르고뉴, 독일 와이너리 등에서 양조 일을 배운 뒤 2013년 와이너리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아들 레옹도 레이블의 예술성을 강조한다. “와인과 예술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믿어요. 예술은 감성을 표현하는 매개체죠. 와인 마시는 행위는 레이블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예술성을 가미하기 위해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요”  레옹은 한가지를 더 강조했다. 바로 와인의 퀄리티다. 아무리 레이블이 독창적이 예술성이 뛰어나도 와인의 품질이 좋아야 모든 것이 가능하기에 품질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다고 한다.

와인메이커 안토니오 스푸리오(Antonio Spurio)
25년동안 와인메이커로서 외길을 걸어온 안토니오는 땅을 존중하는 철학이 고품질의 니따르디 와인을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니따르디는 부띠끄 와이너리로 최고의 퀄리티를 추구해요. 값싼 미국 오크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프렌치 오크만 쓰죠. 가장 중요한 점은 모든 포도농사를 일체의 화학적인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오가닉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땅을 존중하고 지역 전통과 토착 품종을 사랑하는 철학이 지금의 니따르디를 만들었지요.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메를로 등 국제품종은 다양한 플레이버가 있고 숙성 과정에서 변화무쌍해 매력있는 품종이지만 정말 좋아하는 품종은 산지오베제랍니다. 예민해서 키우기 굉장히 어려운 품종이지만 잘숙성되는 산지오베제를 만들었을때 성취감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답니다”.

까사누오바 디 니따르디(Casanuova di Nittardi) 레이블이 전시된 와이너리 내부와 니따르디 와인들
넥타르 데이(가운데)
니따르디는 현재 레드 5종 화이트 1종을 생산한다. 끼안띠 클라시코에서 까사누오바 디 니따르디와 벨칸토(Belcanto), 니따르디 리제르바(Nittardi Riserva)를 생산하며 마렘마 지역에서 넥타르 데이와 아드 아스트라(Ad Astra), 그리고 화이트 벤(Ben)을 선보인다. 또 와인 양조 이후 남은 과육과 껍질 등의 잔당을 활용해 만든 증류주 그라빠 2종류도 생산한다. 가장 많이 생산하는 아스트라가 4만병에 불과하며 벤은 1만병, 니따르디 리제르바와 넥타르 데이는 각 6000병만 생산한다. 연간 생산량이 모두 15만병에 불과할 정도의 소규모 부띠끄 와이너리다. 니따르디 와인은 현재 메르뱅과 신동와인에서 수입하고 있다.
니따르디 포도밭 전경

투스카나=글· 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