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기자가만난세상] 장애인에 무심한 사회

관련이슈 기자가 만난 세상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17-04-14 20:28:59 수정 : 2017-04-15 01:31:2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몇년 전 전국장애인체전을 취재할 때의 일이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직원의 명함을 받았는데, 시각장애인도 읽을 수 있는 ‘점자명함’이었다. 명함에 관심을 보이자 그는 “점자명함을 홍보하려고 원하는 이들에게 한 통씩 제작해 준다”며 “필요하면 만들어 주겠다”고 말했다. 솔깃한 제안이었지만 이내 괜찮다고 했다. ‘시각장애인에게 명함 줄 일이 얼마나 있겠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지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안마 자원봉사를 하는 시각장애인들을 취재하게 된 것이다. 한 시각장애인이 자신의 명함을 건넸고, 무심코 “저도 드릴게요”라며 명함을 꺼내다 ‘아차’ 싶었다. 명함을 주면 실례일 것 같고, 말은 꺼냈고…. 우물쭈물거리다 “점자명함을 준비 못했다”고 말하자 상대방은 익숙한 일이라는 듯 괜찮다며 웃었다. 흠집 하나 없이 매끄러운 내 명함이 그렇게 못나보일 수가 없었다.

김유나 사회2부 기자
오래전 일이 떠오른 건 최근 우연한 만남 때문이다. 점심시간, 청계천 근처에서 길을 묻는 시각장애인을 만났다. 흰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는 그를 보니 그제야 점자블록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 퇴근길에는 점자블록을 따라 걸어봤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멈춰야 했다. 허리 높이의 철구조물이 떡하니 놓여 있던 것이다. 시각장애인의 보행을 방해하는 철구조물에는 청계천이 ‘보행전용거리’임을 알리는 서울시장과 남대문경찰서장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매일 그 곁을 지났지만 점자블록 위에 있다는 것을 인지한 건 처음이었다. 근래에는 한 통신사의 통신장비까지 점자블록 위에 놓였다. 그 구조물을 설치한 사람들은 ‘점자블록을 사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하고 여겼을 것이다. 묵직한 구조물들을 보며 ‘점자명함은 필요없다’고 단정했던 일이 새삼 떠올랐다.

일상 시설 대부분은 비장애인 입장에서 만들어진다. 장애인을 위해 ‘조금 다른’ 시설이 만들어지지만, 많은 이들이 이를 소홀히 여기고 때로는 ‘잘 쓰이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같은 시설은 장애인에겐 꼭 필요한 것들이다.

최근 취재 중 만난 한 지체장애인은 장애를 갖게 된 뒤 학교에서 전학 권유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휠체어 경사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자퇴를 택한 그는 “장애인 학생이 있을지 몰라 시설을 설치하지 못했다”던 교장의 말이 서운했다고 했다. 현재 우리 사회는 그 교장의 발언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곧 ‘장애인의 날’이 돌아온다. 늘 이맘때면 장애인 정책을 지적하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지방자치단체나 기업들은 각종 장애인 행사를 마련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요란한 정책이나 행사가 아닌 장애인을 대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럴 줄 몰랐다’는 변명 대신 ‘한 명에게라도 도움이 됐으면’이라는 마음으로 시설을 갖추고 운영하는 인식, 이런 섬세함이 장애인을 배려하는 사회의 시작이 아닐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점자명함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명함지갑 한쪽에 점자명함 몇장을 넣어 놓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가 되길 기대한다.

김유나 사회2부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