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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애독서] 억울한 일 없게… 삼가고 삼가는 것이 형벌 다스리는 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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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18 02:01:58 수정 : 2017-04-18 02: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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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흠신서 / 다산 정약용 지음 얼마 전 영화 ‘재심’이 큰 인기를 끌었다. 검경의 잘못된 수사로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려 1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주인공이 재심을 통해 무죄임이 밝혀진다는 줄거리다.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과 함께 수사를 담당하는 법집행기관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자세를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예전에 읽었던 다산(茶山)의 책을 다시 꺼내보았다. 흠흠신서(欽欽新書)는 정약용이 곡산부사·형조참의로 재직 중 접했던 사건들을 정리한 조선시대 최초 형법이론서이다. 그는 오직 옛 글에만 능통한 사대부가 어느 날 갑자기 형벌을 관장하는 사목(司牧)이 되어 간사한 아전에 휘둘리는 일을 염려하였다. 이에 대명률 등 중국 법이론과 판례, 주요 사건들을 알기 쉽게 설명하여 초보 공직자들의 올바른 행동거지와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

이철성 경찰청장
30권에 달하는 방대한 이론과 사례를 보다 보면, 오늘날의 형법이론서나 수사실무집에서 다루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아 시대를 뛰어넘는 다산의 통찰력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다산의 가르침은 경찰을 포함한 대한민국 사법행정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오직 하늘만이 사람을 살리고 또 죽이는 것인데…사람이 하늘의 권한을 대신 쥐고서도 삼가고 두려워할 줄 몰라…살려야 하는 사람을 죽여 놓고…어찌 편안해 하는가”(惟天生人而又死之…人代操天權 罔知兢畏…或生而致死之…尙恬焉安焉)

선조들은 인명과 관계된 판결은 하늘을 대신하는 것이라 여겨 한 사람의 억울함도 없게 하기 위해 ‘털끝을 갈라보고 바늘 끝도 쪼개보는’(剖毫析芒) 정성을 다했다. 선진 민주 법제도가 정착되어 있다고 하는 지금 우리는 얼마나 인권의 가치와 절차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다산은 ‘삼가고 삼가는 것’(흠흠·欽欽)이 형벌을 다스리는 근본이라 하였다. 경찰의 지난 과오는 이러한 다산의 정신을 계승하지 못하고 법집행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 않은 데 있다. 앞으로 수사에 임하는 모든 경찰관들은 흠흠의 가르침을 가슴속 깊이 새길 것이다. 수사과정에서 적법절차를 철저히 준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증거를 샅샅이 살피고 법리를 심사숙고해 단 한 명의 무고한 죄인도 만들지 말라는 ‘법의 정신’을 온전히 실현할 것이다.

이철성 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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