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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문화재] 조선의 역사 살아 숨쉬는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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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20 02:18:15 수정 : 2017-04-20 02: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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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한창인 4월 중순, 서울 남산에 올랐다. 조선시대 궁궐과 도성을 연구하다 보니 남산은 예쁜 벚꽃 이상으로 특별하다. 한양도성(사진)의 남주작(南朱雀)에 해당하는 남산에는 조선의 역사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남산을 얘기하려면 숭례문이 빠질 수 없다. 2008년 숭례문 방화사건 이후 복구가 한창일 때 숭례문 발굴조사를 담당하였다. 당시 복구계획에는 숭례문뿐 아니라 이에 연결된 성벽까지 포함되어 있어, 흔적을 찾아 발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비록 남산으로 올라가는 방향에는 성벽을 쌓기 위해 다진 층만 확인되었지만, 당시 사진이나 기록 등을 참고하여 현재 숭례문 옆으로 일부 성벽이 복원되어 있다.

같이 간 친구는 쭉 이어지지 않고 끊겨 있는 성벽이 어색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한양도성의 성벽은 숭례문에서 시작하여 남산을 타고 올라가 도성 전체를 하나의 울타리처럼 감싸고 있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이다. 한양도성은 전체 18.6㎞나 되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 유지되었던 도성이라고 알려주니, 그제야 놀랍다고 한다.

남산 꼭대기에는 많은 이들의 약속 장소인 ‘팔각정’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 자리에 국가의 중요한 제사를 지낸 ‘국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남산은 원래 목멱산이라고도 했는데, 태조는 남산을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모시고 일반인의 제사를 금하였다 한다. 그 옆에는 남산 봉수가 위치한다. 남산 봉수는 전국의 봉수가 집결하는 종점에 해당하는 중요한 봉수로, 현재의 봉수는 복원된 것이다. 총 5개의 봉수에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적의 침입을 알렸다고 한다.

남산은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여러 역사를 품고 있다. 비록 많은 부분이 남아 있진 않지만, 다음에 남산에 가면 남산타워만 들르지 말고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최인화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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