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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엄마 셋을 앗아간 ‘음주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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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24 01:19:20 수정 : 2017-04-24 07:5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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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고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지난 15일 밤, 고모는 음주운전자의 차량에 치여 현장에서 돌아가셨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아직도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사고 전까지, 고모는 즐거웠다. 경기도 화성에서 자동차공업사를 하는 고모부 가게는 하루 종일 장사가 잘됐다. 저녁에는 주말을 맞아 충남 서산에 사는 고모부 조카 가족이 놀러왔다. 맛있게 저녁식사를 하고, 노래방에 가서 흥겨운 시간도 보냈다. 평소 언니 동생 하는 친한 동네 이웃도 함께했다. 이후 고모부와 조카는 따로 할 이야기가 있어 빠지고, 나머지는 고모집으로 향했다. 봄날 밤기운을 만끽하면서 산보도 할 겸 고모 일행은 집까지 걸었다. 고모는 조카며느리, 조카손녀, 이웃 동생과 함께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을 것이다. 잠시 후 닥칠 일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김선영 사회부 기자
그 시간, 택배기사 이모(39)씨는 술을 마시고 운전 중이었다. 그는 경기 안산 상록구의 한 음식점에서 회식하며 소주 한 병 반 정도를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 가기 위해 자신의 택배 차량인 1t 트럭을 몰고 20여㎞를 달렸다. 술이 과해 졸음운전까지 했다고 한다. 사고 당시 현장을 찍은 CC(폐쇄회로) TV를 확인해 보니 이씨는 마지막까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고모 일행에게 돌진했다. 충돌 후에도 50여m를 더 달려 가로등을 들이받고서야 멈췄다. 체포 당시 이씨의 혈중알코올 농도는 면허 취소 수치인 0.108%로 측정됐다. 이 사고로 고모뿐만 아니라 조카며느리, 이웃 동생까지 3명이 사망했다. 다시 한번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사고 생각만 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이씨의 음주운전은 세 가정의 엄마를 앗아가는 비극을 낳았다. 올해 중학교 1학년인 조카손녀는 다행히 화를 면했지만, 사고로 엄마를 잃은 충격이 얼마나 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교통경찰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가해자 처벌 수준을 묻자 최대 징역 4∼5년이라고 한다. 지난해 6월 만취 상태(혈중알코올 농도 0.122%)로 운전하다 신호를 기다리던 앞차를 들이받아 일가족 3명을 사망케 한 김모(34)씨는 최근 2심에서 징역 5년을 받았다. 이마저도 1심에서 징역 4년을 받은 김씨가 형이 너무 무겁다며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더 높은 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음주운전 자체도 문제인데 사망사고를 냈음에도 처벌 수준은 너무나 미약하다.

고모의 사고 이후에도 음주운전 관련 뉴스는 여전히 쏟아졌다. 한 유명 방송인은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고 도주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음주운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제주에서는 음주운전 차량과 이를 뒤쫓던 순찰차가 충돌해 경찰관 등 5명이 다치기도 했다. 술을 한 모금만 입에 대도 운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인식이 아직 미흡하고, 제도적 장치 역시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모는 영면에 들었다. 이제 남은 사람들은 또 각자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기자로서 나에겐 할 일이 생겼다. 음주운전의 폐해를 알리고, 이를 막을 수 있는 제도 개선을 위한 기사를 쓰는 것이다. 그것이 고모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조카로서의 마지막 도리가 아닐까 싶다. “잘가, 고모. 하늘나라에서 꼭 행복해.”

김선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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