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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메모] 장애 당사자 외면 정책은 있으나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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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23 18:25:52 수정 : 2017-04-23 22: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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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당당히 밝혀 등록률 높아” / 심리지원제 필요하지 않다는 담당 공무원 ‘현실 괴리’ 씁쓸 / 장애인들 목소리 귀 기울여야 “요즘은 장애인들이 본인의 장애를 꺼리지는 않는 것 같아요.”

지난주 보도된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시리즈(세계일보 4월17∼21일자 참조)는 중도(후천적) 척수장애인들의 열악한 재활체계를 지적한 기사다. 취재 중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관계자에게 ‘중도 장애인이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주는 심리지원제도가 있느냐’고 묻자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전화를 걸기 전까지만 해도, 정부가 중도 장애인의 고통은 알고 있으나 여력이 없어 심리지원제도를 마련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 같은 제도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해당 공무원은 “예전에는 본인이 장애인이란 것을 밝히기 싫어해서 장애인 등록을 안 했는데, 요즘은 등록률이 매우 높다.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며 “심리지원제도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제도를 마련하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이나 반성의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김유나 사회2부 기자
그의 말이 다소 ‘황당’하게 느껴졌던 것은, 취재 과정에서 만난 장애인들이 전한 현실과 매우 괴리가 컸기 때문이다. 국내 장애인의 90%가량은 중도 장애인이다. 대부분의 중도 장애인은 장애 정도가 크든 작든 간에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장애인 등록률이 높은 것은 다들 장애를 잘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하는 공무원이 단 한번이라도 중도 장애인과 대화를 나눠봤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런 ‘괴리감’은 취재 내내 이어졌다. 많은 여성 척수장애인들은 편의시설 미흡 등으로 산부인과를 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2014년부터 ‘여성 장애인 임신·출산 양육지원 조례’를 운영하고 있는 서울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시 관계자는 “서울에는 산부인과가 많으니 본인에게 맞는 산부인과에 가면 된다”며 산부인과 접근성에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몇달간의 취재로 알 수 있는 문제들도 담당 공무원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장애인 정책이 장애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만 짜인 것 같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조만간 복지부 관계자가 한국척수장애인협회의 ‘일상홈’을 참관할 계획이라고 한다. 일상홈은 중도 척수장애인이 혼자 생활할 수 있도록 훈련 하는 곳이다. 협회가 ‘사회복귀를 위해 꼭 필요한 재활’이라고 말하는 시스템이지만 정부의 예산 지원은 받지 못하고 있다. 장애 극복을 당사자의 의지, 가족의 지원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복지부의 장애인 정책은 장애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김유나 사회2부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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