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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파먹기’로 미래 경쟁 실종
용광로 정부, 협치 시대 가능할까
유권자 맘껏 상상력 발휘해
맞고 싶은 미래 선택해야
5·9대선을 앞두고 오지선다 답안지를 받아든 것 같다. 다섯 개 항목 가운데 한 가지 답을 고르는 문제 말이다. 고대하던 문제는 이런 것이 아니다. 그냥 한 개를 골라 찍으면 되는 객관식 문제 말고 주관식 문제를 기대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되짚고 이 엄중한 위기를 헤쳐나가려면 어떤 국가 리더십이 필요한가를 답안지에 빼곡히 적고 싶었다. 보다 나은 세상이 펼쳐질 것이란 희망과 그런 세상을 위해 기꺼이 힘을 보태겠다는 의지를 담으려 했다. 그러나 지금의 대선판은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 창의력과 상상력의 날개를 펴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저 주어진 문항 가운데 그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익숙한 것을 손가락 가는 대로 고르도록 요구하고 있다.

후보들과 정당들은 ‘장미대선’의 의미를 그새 잊은 것 같다. 대통령 하나 바꾸자고 지난 긴 겨울 내내 광장을 촛불로 밝힌 것이 아니다. 집권여당 새누리당에 참패를 안기고 3당체제를 만든 20대 총선 선거혁명에서 나타난 민의는 정치개혁이었다. 민심을 거스르다 대통령 탄핵 사태를 맞았다. 국민의 이름으로 법치를 세우며 다짐한 것이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고 하나 된 대한민국으로 새출발하자는 것이었다. 대장정의 출발점이 이번 대선이다.


김기홍 논설위원
그러나 조짐이 불길하다. 밝게 빛나던 촛불이 희미해지고 뜨거웠던 국민통합 결의가 식어가고 있다. ‘누가 돼야 한다’가 아니라 ‘누가 돼서는 안 된다’는 구호에 휩쓸린 ‘과거 파먹기’에 빠진 나머지 미래 경쟁, 정책 대결이 실종됐다. 5개 문항 중에 정답이 있기는 한 것인지 혼란스럽다. 대선이 끝나면 가까스로 벗어난 것처럼 보였던 어두운 터널 속에서 다시 헤매게 될지 모른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탄핵 반사이익을 보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반문 반사이익을 얻는다는 지적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된다. 입으로는 통합을 말하면서 갈등 조장에 앞장서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한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 등이 약속하는 대한민국은 큰 차이가 없다. 그들이 말하는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 ‘위대한 변화’는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들이 국민에게 보여주려는 세상은 유토피아에 가깝다. 공약은 덜 준비된 듯하다. 재원 대책도 마땅치 않은 부실한 선심성 정책은 시간 부족 탓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누가 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고 누가 더 많은 진심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선택 기준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성을 보여주기는커녕 네거티브식 비방에 몰두하고 있다. 용광로 정부, 협치의 시대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국민축제의 장을 맨 앞에서 난장판으로 만드는 것은 암호 같은 이야기를 지어내는 선동꾼들이다. 이 선동에 따르면 국민은 ‘적폐세력’과 ‘과거회귀 세력’ 두 부류가 있다. 홍준표 찍으면 문재인이 된다는 ‘홍찍문’, 안철수 찍으면 박지원이 상왕 된다는 ‘안찍박’, 안철수 찍으면 도로 김대중정권이라는 ‘안찍김’, 문재인 찍으면 도로 노무현정권이 될 것이라는 ‘문찍노’, 문재인 찍으면 김정은이 웃을 것이라는 ‘문찍김’ 같은 낙인찍기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영호남 대결 구도가 사라졌다고는 하나 이념 대결, 편가르기 진영 갈등은 여전하다. 이런 분탕질, 이분법이 횡행하는 것을 보면 국민을 바보 천치로 여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음모와 술수가 판치는 아수라장에서 유권자가 ‘건전 세력’으로 남는 것도 힘겨운 일이다.

대선판이 걱정스러울수록 유권자가 분발해야 한다. 지난 수십년간 강요받아온,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정답을 고르는 주입식 선거에서 벗어나야 한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내 손으로 선택하기 위해 고정관념은 버리고 응용력, 사고력, 비판력, 창의력을 맘껏 발휘하자. 한숨부터 나오는 TV토론이지만 한눈팔지 말고 꼼꼼히 챙겨볼 필요가 있다. 옥석을 가리는 것은 유권자의 권리이고 능력이다. 프랑스 대선에서 비주류 정당이 결선투표에 진출하며 기득권 정치에 경종을 울렸다. 유권자가 만들어낸 변화의 물결이다. 우리도 할 일이 많다.

김기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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