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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만난 세상] ‘엑소(EXO) 덕후’ 나이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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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29 14:00:00 수정 : 2017-04-29 11: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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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학시절 친구들을 만났다. 시간에 맞춰 하나둘 들어오는데 친구 A가 1시간 넘도록 도착하지 않았다. 헐레벌떡 들어온 그는 무엇을 하고 왔는지 둘러대다가 결국 아이돌 보이그룹 행사에 다녀왔다고 실토했다.

A는 일명 ‘아이돌 덕후(마니아)’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그는 퇴근 뒤 혹은 주말이면 남자 아이돌 그룹 엑소(EXO)를 쫓아다닌다. 콘서트부터 팬미팅 등 각종 공개 행사는 모두 챙긴다. 좋아하는 멤버의 개인사도 줄줄이 꿰고 있다. 그는 엑소 관련 얘기를 잘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한 번 말문이 트이니 에피소드가 줄을 이었다. 그가 엑소를 따라다닌 지는 4년이 넘었다. 취업 준비 중이던 2013년 어느날 우연히 엑소 노래를 들었는데 멜로디가 마음에 들어 뮤직비디오를 찾아봤다. 자연스레 팬이 됐고 콘서트에 한두 번 다녔다. 현장에서 추억을 남기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덕후 생활이 어느새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그가 메고 온 가방은 겉보기에도 묵직했다. 열어보니 간이 의자, 고급 카메라와 렌즈 등이 나왔다. 이날은 없었으나 종종 4단 사다리를 들고 다닌다고 했다. 요즘은 차를 사 트렁크에 넣고 다니지만 뚜벅이 시절에는 사다리를 들고 지하철을 탔다. 그는 콘서트마다 엑소가 잘 보이는 자리를 선점해 다양한 사진을 찍고 트위터에 올린다. 지난해에는 찍은 사진을 모아서 전시회도 열었다. 독특한 사진을 모아 컵이나 부채를 만들어 다른 팬들에게 판다. 수익금으로 멤버 생일날 지하철이나 버스에 광고를 하거나 선물을 전달한다.

처음에는 서른이 된 그에게 연예인을 따라다닌다고 핀잔을 줬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어보니 금세 수긍했다. 그는 40대, 50대 팬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이들의 활동은 숙소에 잠입하거나 일거수일투족을 알아내려는 사생팬과는 거리가 멀다. 연예인 사생활은 철저히 존중해준다. 대신 주말 등 쉬는 시간을 활용해 행사장에 아이돌을 보러 간다. 이제는 멤버들도 그를 알 정도다. A는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모임을 만들었다. 이들은 공연이 끝나고 같이 밥을 먹을 때도 있고 누가 행사에 못 갈 때 대신 찍어 전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주변에 이런 활동을 철저히 비공개한다. 당일치기로 해외에 자주 나갔다 오는데 엑소만 보고 돌아왔다고 하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기 때문이다. “그 나이 들어서도 연예인을 따라다니냐”는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이들을 위축시킨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들만의 용어로 ‘일코(일반인 코스프레)’를 한다. 겉으로는 다른 사람들처럼 연예인에 관심없는 척한다는 뜻이다.

최형창 기자
A는 “하나의 취미생활로 봐줬으면 한다”고 푸념했다. 돌이켜보면 기자도 학창시절 주중과 주말 가리지 않고 스포츠 경기를 보러다녔고 결국 취미가 발전해 체육기자까지 됐다. 농구장과 축구장, 야구장 가릴 것 없이 갔고 경기 끝나면 선수들 사인 한 번 받아보려고 기다린 적도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듯 취미생활도 급을 나눠 폄훼하면 안 된다. 이들의 활동 역시 존중받아야 할 취미의 한 종류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다면 이만한 취미도 없지 않을까.

최형창 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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