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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잠이 들었다가 어중간하게 잠이 깨어 흘러간 영화 한 편을 다시 보았다. 알파치노가 열연한 ‘여인의 향기’. 이탈리아 영화(1974년)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해(1992년) 알파치노에게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고 이 영화의 최고 명장면으로 꼽히는 탱고 신에 배경으로 흐른 OST ‘간발의 차이’(Por Una Cabeza)는 근년까지도 광고에 등장할 정도로 오래 살아남았다. 그날 새벽에 자다가 깨어 사로잡힌 건 영화음악도 알파치노도 아니었다.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라는 새삼스러운 명대사였다.

되짚어보자. 알파치노가 분한 프랭크 중령은 잘나가던 군인이었는데 만취한 상태에서 실수로 수류탄을 터트려 실명을 한 퇴역군인이다. 조카에게 얹혀 사는 그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말 그대로 어둠 속에 있을 뿐이다. 그가 자신이 연금으로 받는 돈을 모두 털어서 호화판 자살여행을 시도한다. 그를 돕는 아르바이트 소년의 도움을 받아 뉴욕으로 가서 최고급 호텔에 묵으면서 창녀를 사서 하룻밤을 보내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옆 좌석 미인에게 탱고를 청한다. 실수할까봐 걱정하는 여인에게 그는 “탱고는 인생과는 달리 단순해서 실수를 해도 스텝이 엉키고 만다. 그게 바로 탱고”라고 안심시킨다. 수작은 성공을 거두고 그들은 멋진 탱고를 완성했다.

최근 ‘오디세우스 다다’라는 필명으로 ‘오직 땅고만을 추었다’는 책을 낸 하재봉 시인은 “탱고는 걷는 것이며, 걷는다는 의미가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전부인데, 걷기이지만 그러나 그 걷기는 혼자 걷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걷는 것이고, 그냥 걷는 게 아니라 음악과 함께 걷는 것”이라면서 “그러니까 탱고는 두 사람이 음악을 들으며 함께 걷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권총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들이대며 자살하려는 알파치노를 소년이 애타게 말릴 때 그는 말한다.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한 가지만 대보라”고. 소년은 엉뚱하게도 탱고를 잘 추지 않느냐고 울면서 말한다. 이 대목에서 소년은 알파치노가 여인을 유혹할 때 썼던 대사를 그대로 돌려준다. “스텝이 엉키면 그것이 바로 탱고”라고. 거창하게 말할 것 없다. 춤은 춤이고 탱고는 탱고일 따름이다. 인생은 다르다. 한번 꼬이기 시작하면 걷잡기 힘들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문제는 그 꼬인 상태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일 것이다. “스텝이 엉키는 것 그게 바로 인생”이라고 헛헛하게 말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한 세상 아름다운 춤 한 번 추다 가는 것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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