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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의월요일에읽는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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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01 01:27:53 수정 : 2017-05-01 01:2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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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1903~1950)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ㅎ게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지난 주말 학생들과 함께 필자는 전남 강진 영랑 생가를 다녀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진한 모란 향기가 그의 시비 앞에 발걸음을 오래 멈추게 했다.

영랑은 섬세하고 연약한 여성적인 시적 경향과 달리 호방하고 야성적인 풍모를 가진 운동선수 출신의 시인이었다. 음악에 관심을 가진 취향과 여성 편력은 잘 알려진 바이지만, 조선 무용계의 여왕이 된 최승희(평론가 안막과 결혼하여 월북)와 목숨 건 사랑을 나누다가 결혼을 하려 했지만 양가 부모들의 반대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여 그 아픔을 참지 못해 뒤란 대나무 숲 동백나무에 목매달고 자살을 시도하려다가 발각돼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사실은 최근에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김영남 시인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영랑의 가슴속에서 찬란하게 솟았던 기쁨이 갑자기 사라진 심사를 뚝뚝 진 모란의 모습을 가져와 그려내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교과서 등에서 안내받은 이 시에 대한 감상의 주 내용은 ‘순수시’, ‘현실의 극복’, ‘시인의 소망과 염원’ 등 애매하고 허술한 관점의 내용이다.

이 시는 소월의 ‘진달래꽃’과 같이 이별의 정한을 피고 지는 모란의 모습에 비겨 노래한 전형적인 연시다. 최승희와의 이별의 슬픔을 극복하는 데 몹시 힘들었을 터이고, 뚝뚝 져 있는 모란의 모습이 시인의 심사를 대변하기에 적격이었을 것이다. 연시에 천착해 본 시인이라면 필자의 이러한 견해에 쉽게 동의하리라 여긴다.

김영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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