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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갤러리] 아련한 집의 풍경… 추억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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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10 01:20:57 수정 : 2017-05-10 01: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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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식 ‘이스트 사이드’
(40.9×31.8㎝, 10∼23일 선화랑)
저만치 아련한 고향집 풍경이 보인다. 금방이라도 어머니가 문을 열고 나와 반겨줄 것만 같다. ‘어서 와 같이 놀자’며 손을 내미는 형제자매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김명식 작가의 자유분방한 나이프가 캔버스 위에서 춤을 추니, 색은 형태들의 경계를 넘어 추억 속으로 데려다준다. 각자 나름의 집의 심상(心象)을 오버랩되게 만드는 마술이다.

집의 형태는 보는 이가 집을 연상할 수 있을 만큼까지다. 바로 그 찰나에 집과 관련된 유년의 기억이 떠오르게 된다. 게다가 배경음악처럼 무채색이 깔리니 감성모드라 할 수 있다. 세월을 두고 퇴색한 듯한 질감은 추억과 상념을 불러내는 코드다. 그렇게 해서 기억의 편린들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되새김질하는 동안에 영혼은 위로를 받게 된다. 그래서 집은 인간의 근원적 회귀 욕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각자의 가슴에 담고 있는 이상적인 유토피아로 다가온다.

우리에게 ‘집’의 원형은 무엇일까. 우리가 돌아가야 할 그곳이다. 휴식을 위해서도, 거친 세상에 상처 난 마음을 거뜬하게 해주는 버팀목으로서도 그렇다.

몸을 쉬게 해주는 공간은 집 말고도 많다. 하지만 마음을 쉬게 해주는 곳은 집밖에 없다고 한다. 문제는 마음을 쉬게 할 줄은 모른다는 데에 있다. 마음도 쉬어야 한다. 몸은 잠들면 쉬게 되지만 마음은 어찌 쉰단 말인가. 마음의 쉼은 늘 순수한 본래 마음 상태로 회복하는 것이란 말이 있다. 수도승에게는 좌선일 수 있고, 한 가정에서는 자녀와 부모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집이 ‘마음의 쉼터’인 이유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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