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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현기자의역사항쟁지다시보기] 블라디보스토크 고려사범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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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18 21:26:27 수정 : 2017-05-18 21: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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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1860년 베이징조약에 의해 시베리아 연해주를 점유한 뒤 이 지역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한인들의 연해주 진출도 시작됐다. 1863년 두만강을 건너 연추 부근의 지신허에 한인 13가구가 이주했다. 이후 함경도와 평안도의 가난한 농민들이 잇따라 연해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신허에 이어 1865년에는 수이푼(秋風) 지역에도 100여가구가 모여 살면서 한인촌이 성립됐다. 1860년대 후반과 1870년대에는 더욱 많은 한인들이 연해주로 옮겨가 니콜리스크(현 우수리스크)와 하바롭스크, 사만리, 블라디보스토크 한인촌을 개척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러시아 극동지역에는 한인 마을들이 들어서면서 여러 초등학교가 설립됐다. 특히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에 소련 혁명정부는 지방 및 소수민족 정책을 펴나가면서 현지 토착 민족의 가치를 존중하는 토착화를 시행했다. 이에 따라 토착 민족 출신의 우수한 인재를 행정기관에 임용하고, 언어도 토착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됐다. 이 과정에서 고려인도 자연스럽게 교육기관에서 한국어를 사용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오케안스카야 프로스펙트 18번지. 1931년 이 자리에 고려인들을 위한 사범대학이 건립됐다.
독립기념관 제공
이에 힘입어 1927년에는 니콜스크 우수리스크에서 고려인사범학교가, 1930년에도 포시예트에 고려인사범학교가 설립됐다. 이러한 분위기에 따라 1931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주한 고려인들은 사범대학 건립 계획을 세우고, 이전의 원동국제사범대학을 원동고려사범대학으로 재출범시켰다. 한인 교사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고려사범대학은 1935년 첫 졸업생 17명을 배출했다. 학교 내에 단기 코스의 노동학원을 동시에 운영 중이었는데, 1934년 5월 당시 고려사범대학에 158명, 노동학원에 265명의 노동자·농민 출신 학생들이 재학 중이었다. 1937년 강제이주 당시 교사(校舍), 소장도서 등이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로 옮겼으나 카자흐스탄 국립사범대학으로 바뀌고 말았다. 또 일부 소장도서와 자료들은 상당수가 파괴ㆍ소실되고 일부가 현재 알마타 푸시킨 도서관에 소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1938년에 소련 당국의 명령으로 원동고려사범대학은 크질오르다사범대학으로 바뀌었고, 고려인 민족대학에서 소련식 국가학교로 개편되었다. 1996년에 다시 크질오르다대학교로 바뀌었지만, 고려인 민족학교의 성격은 남아 있지 않았다.

류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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