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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앵그리 버드’의 스마일 출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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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19 21:50:00 수정 : 2017-05-19 23:2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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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서울청사의 근면 성실한 중년 사무관 A씨를 두고 주변 사람들은 모바일 게임 주인공인 ‘앵그리 버드’라 부른다. 업무에 치여 노상 구겨진 미간과 불만으로 가득 찬 눈빛 탓이다. 사람들은 새빨간 깃털을 곤두세우며 사소한 일에도 화를 터트리는 ‘앵그리 버드’가 그와 꼭 닮았다고 수군대곤 했다.

그런데 최근 A씨가 졸지에 ‘0.01%의 사나이’로 등극해 관계자들 사이에서 새삼 화제가 됐다고 한다. 3월부터 행정자치부는 정부청사의 보안 강화 차원에서 출입자를 대상으로 얼굴인식 시스템을 도입했다. 개인 출입증 사진에 기반한 얼굴인식 시스템은 꽤 정확해 통과율 99.9%를 자랑하고 있다. 다만 A씨의 경우는 예외였다. 낡은 출입증 사진 속 그가 지금과는 사뭇 다른 햇살 같은 미소를 간직하고 있어 여지없이 ‘신원 불일치’ 경고음이 울렸다. 결국 그는 시스템 모니터에 대고 억지로 입 꼬리를 올린 뒤에야 가까스로 ‘본인 인증’ 절차를 마칠 수 있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A씨의 어색한 미소에 주변 사람들이 남몰래 웃음을 터트렸다는 후문이다.

경제부 출입 기자에게 전해들은 ‘촌극’이다.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론 현 시대의 씁쓸한 초상을 목도한 듯했다. A씨도 한때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격무와 피로,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오는 권태감이 엄습해 인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안병수 체육부 기자
이는 비단 A씨뿐이 아니다. ‘스트레스 공화국’의 대명사 한국에선 점차 웃음을 잃어가는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최장의 노동시간, 최고의 산업재해사망률을 보이는 열악한 노동환경은 매해 발표 때마다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지만 정권이 몇 차례 바뀌어도 나아질 기미가 없다. 이 때문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쓰지 않았을 비용’이라는 의미의 ‘시발비용’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는 판이다.

구직자들은 어떨까. 통계청이 지난 11일 발표한 4월 청년실업률은 1999년 6월 통계 기준 변경 이후 최고치인 11.2%를 기록했다. 대학 시절 ‘스마일 퀸’으로 이름을 날린 B씨,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미소로 ‘동안’ 소리를 귀에 닳도록 들었던 C씨 등 이 시대를 견디는 많은 이들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쓰고 있다.

이처럼 매번 우울한 소식만 들려오니 ‘앵그리 버드’가 활개를 칠 만하다. 실제로 한국웃음연구소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한국 성인들이 하루에 웃는 횟수는 6~7번에 그치는 것으로 나왔다. 그들이 한때는 굴러다니는 낙엽에도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을 걸 생각하면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마음이 무겁다. 온당치 않은 비유지만 문득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화 ‘최후의 만찬’이 떠오른다. 그림 속 예수와 ‘배신자’ 유다의 모델은 같은 사람이다. 다만 유다는 예수의 모델이 된 맑은 청년의 6년 뒤 얼굴이다.

시대는 아직 어둡지만 정권은 바뀌었다. 사람들은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며 촛불을 들었고, 표를 던졌다. 부디 새 시대를 약속하며 첫발을 뗀 정부가 ‘앵그리 버드’들의 잃어버린 웃음을 조금이나마 되찾아 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

안병수 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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