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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블랙리스트 낙인’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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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21 21:33:08 수정 : 2017-05-21 21: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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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블랙리스트’ 피해자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인 친구 A가 자신도 피해자라고 털어놨다. 오랫동안 A를 알고지낸 필자 입장에서는 다소 의외였다. “그런 리스트에 오르기엔 별로 알려진 작품도 없는데 참 신기하다”며 장난스레 묻자 농담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세월호 진상규명 촉구 서명이 리스트에 오른 이유로 적시됐다는 것이다. 그의 친구 한 명은 2012년 대선 당시 특정 후보에 대한 공개 지지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리스트에 올랐다고 A는 전했다. 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인이 1만명을 넘었는지 비로소 납득이 됐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낙인으로 인한 피해는 현재진행형이다. 일거리는 여전히 안 들어오고, 소송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A는 푸념했다. 영상단체 사람들과 팀을 꾸려 법적 대응을 준비하겠다고 하지만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은 모양새다.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휘한 사람들을 법정에 세워 처벌받게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재발 방지책, 피해자들 구제책이 뒤따르지 않으니 당사자들은 여전히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김라윤 경제부 기자
또 다른 블랙리스트 파동을 막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문화체육부 산하 기관들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직접 현장에서 예술인들과 오랜 시간 부딪치며 노하우를 쌓아온 전문가들의 의견이 정책에 충실히 반영되어야 할 텐데 실상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매년 기획재정부에서 예산을 배정받는 현행 체계 에서는 지원기관들의 눈치를 보며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문건으로 작성돼있어야만 ‘블랙리스트’인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예술인들과 오랜 소통 끝에 절감한 문제점을 바탕으로 각 기관이 지원금을 책정해도 기재부의 예산 집행 방향이 달라지면 순식간에 엎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면서 ‘문화융성’을 기치로 내걸자 관련 부처들은 문화융성 관련 행사에 돈을 쏟아부어야 했다. 그 와중에 정작 돈이 필요한 부문은 소외됐다. 당시 문화예술 지원기관의 한 인사담당자는 “정부조차 문화융성의 뜻을 명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문화융성 예산 집행 지시가 내려왔다”며 “채용 전형 과정 중인 인턴들에게 ‘문화융성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이를 위한 정책 프레젠테이션을 하라’는 ‘웃픈’ 과제를 내리기도 했다”고 씁쓰레했다.

예술인 지원기관들이 매년 재원을 기재부에서 배정 받는 시스템이 아니라 독립된 문화예술진흥기금을 통해 충당할 수 있다면 정부로부터의 독립성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는 법적으로 문화예술진흥기금의 사용처가 엄격히 정해져 있어 산하 기관이 이를 유연하게 사용할 수도 없다. 이대로 간다면 당장 내년에 기금 자체가 바닥을 드러내는데, 이 경우 정부에 대한 문화예속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문화예술과 예술인에 대한 지원은 장기적 관점에서 꾸준히 진행되어야 하는데, 매년 가시적인 단기 성과만을 강조하며 목표가 바뀔 수 있다는 것도 큰 문제점이다. 부디 새 정부에선 지원기관들이 보다 소신 있는 행정을 펼칠 수 있도록 문화예술진흥기금 확충 방안을 마련해 주고 이들 기관의 자율성을 인정해 줄 것을 당부한다.

김라윤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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