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서베를린의 자유대학교 에케하르트 크리펜도르프 교수가 나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분은 나의 주제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최근에 쓴 것인데 나에게는 성경과 같은 것일세, 한번 읽어 보게나” 하며 주신 책이 ‘Staat und Krieg:Die historische Logik politischer Unvernunft’(1985)이다. ‘국가와 전쟁, 정치적 비이성의 역사적 논리’로 번역될 수 있다.
손기웅 통일연구원 원장 |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고, 유학 온 지 2년 반이 의미가 없었다. 방황과 고통 끝에 간신히 나만의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 지금까지의 평화 연구는 인간과 인간, 국가와 국가 간, 즉 인간의 사회적 환경에 집중되었어, 진정한 평화는 여기에 더하여 인간과 자연환경 간의 평화도 포괄해야 해, 인간과 국가 간에 이룩하고자 하는 평화는 자연환경이 물적, 질적으로 받쳐주지 않으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어, 평화 연구를 인간 삶의 전 환경, 즉 사회적 환경과 자연적 환경 전 차원에서 한번 탐구해보자, 평화 연구의 지평을 넓히고, 그것을 통해 평화 실현에 좀 더 실질적으로 다가가자는 결론을 얻었다.
3년 후 박사논문 ‘환경군국주의. 사회적 군국주의와 생태적 군국주의’를 탈고했다. 국가와 전쟁은 세계사에 대한 내 인식의 지평을 열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평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여는 계기가 되어준 책이었다. ‘세계관’(Weltanschauung)이 아니라 ‘환경세계관’(Umweltanschauung)이 평화를 운위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내 주장의 기초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내 삶의 탄탄한 초석이다.
손기웅 통일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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