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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홀대받던 문화 ‘화려한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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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28 22:10:44 수정 : 2017-05-29 01: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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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때였다. 교실에 순정만화 한 질이 홀연히 등장했다. 지역에 처음 생긴 만화방에서 누군가 빌려온 보물이었다. 아동만화 조금 본 게 다였던 내게 ‘본격’ 순정만화는 꿀보다 달콤하고 솜사탕보다 화사했다. 하지만 일탈은 1, 2주도 못 갔다. 만화방이 문을 닫았다. 교육환경을 우려한 학부모들이 영업을 반대했다고 한다.

뭐든 금지당할수록 갈망이 커지는 법이다. 이후 머리가 굵어지면서 만화는 내 휴식처이자 도피처가 됐다. 만화책을 쌓아놓고 보내는 휴일에는 유유자적함 이상의 특별함이 있었다. 생산적이지 않은 활동을 해도 괜찮다는 안도감이 더해져서였던 것 같다. 물론 만화를 읽은 가장 큰 이유는 재미였다. 1990년대 후반 한국만화가 르네상스를 맞아 꽃피던 시기였으니 읽을 작품이 넘쳐났다.

하지만 만화를 하위문화로 취급하던 사회의 시선은 크게 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의아했다. 만화에는 섬세한 감수성, 기발한 상상력, 진보적 세계관, 영화 컷을 연상시키는 연출법까지 끝없는 매력이 있었다. 몇몇 만화의 작품성은 범작 수준의 문학보다 나았다. 가끔 문학보다 만화에서 더 많은 공감과 감동을 느낄 때도 있었다. 오히려 제법 알려진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필자의 자아도취에 실소하거나 허술한 서사, 편협한 인식에 실망하기도 했다.

송은아 문화부 기자
만화를 향한 은근한 푸대접의 역사 때문인지, 최근 웹툰의 비상이 유독 반갑다. 한때 인터넷에 치여 고사하나 싶던 종이만화는 10여년 사이 웹툰으로 더 화려한 날개를 펼치고 있다. 이제는 문화산업의 ‘금광’으로 대접받고 있다. ‘미생’ ‘송곳’ ‘치즈인더트랩’ ‘동네변호사 조들호’ ‘운빨 로맨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는 나열하기도 입 아프다.

공연계도 웹툰을 적극 끌어안고 있다. 작가 김풍의 ‘찌질의 역사’는 내달 같은 이름의 뮤지컬로 무대에 오른다. 에이콤인터내셔날 윤호진 대표가 제작을 맡았다. 윤 대표는 ‘명성황후’ ‘영웅’ 등 역사의식을 담아 선굵은 작품을 만들어온 창작뮤지컬계 대부다. 작가 주호민의 인기 웹툰 ‘신과 함께’도 2년 전 창작가무극으로 만들어졌다. 내달 말 다시 공연한다. 우리 민속신을 재해석한 원작도 흥미롭고, 7개 지옥을 형상화한 공연도 세련됐다. 놓치기 아까운 무대다. 웹툰은 아니나 일본만화 ‘데스노트’를 옮긴 동명 뮤지컬 역시 최근 1∼2년 화제가 됐다. 만화 원작이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천덕꾸러기에서 벗어나기는 게임 산업도 마찬가지다. 한때 게임은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탄과 규제의 대상처럼 여겨졌다. 최근에는 ‘게임 한류’로서 영향력이 주목받고 있다. 2015년 문화콘텐츠 수출액 중 게임 산업의 비중은 56.8%나 된다. 중국에 뒤진 산업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물론 ‘돈이 되니 귀한 몸’ 취급하는 건 문화를 고급·저급으로 나누는 것만큼이나 얄팍한 발상이다. 다만 만화와 게임의 부상을 보며, 문화에 대한 닫힌 자세와 선입견의 위험성을 돌아보게 된다. 취향에는 우월이 없고, 그릇보다 내용물이 중요하다는 새삼스러운 사실도 되새기게 만든다.

송은아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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