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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의월요일에읽는시] 물의 집 -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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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28 22:10:52 수정 : 2017-05-28 22: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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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준(1956~)
멍 자국이다
호수는
팍팍한 물푸레나무 새순에도
장다리 꽃봉오리에도
푸른 숨결 실타래처럼 풀어주고
개울 짚고 되비쳐 오르는 봄 햇살 얹혀
유쾌하게 옹알대는 물소리
그때는
지상의 모든 길들이 산책길 같았지
길들여지지 않은 짐승처럼
가마득한 벼랑 사납게 타고 내리고
소용돌이치는 살여울 진저리치며 헤쳐 나와
이랑마다 멍든 푸른 물들
서로 몸 섞어 등 토닥이며
부르튼 맨발 겹겹이 포개
잠드는 집
호수는 물들의 선연한 멍 자국이다

더운 피로 상처 씻고 도움닫기 하는
강물의 지느러미 싱싱하다.


물의 지혜, 노자의 도덕경에 의하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해줄 뿐 자신의 고명을 위해 일체 다투지 않고, 남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해 있으므로 도(道)에 가까운 존재다. 그러므로 물은 허물이 없다“고 설명한다. 물은 자기를 고집하지 않아 둥근 그릇에 넣으면 둥글고 모진 데 넣으면 모가 진다. 뜨겁게 끓어 증발해도 물이고 얼어도 물이다. 다시 말해서 물은 자기를 고집하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자기를 잃지 않는다.

김영남 시인
노자가 자신의 생각을 물의 외적 속성에 비유했다면 김동준의 인용시 ‘물의 집’에서는 물의 내적 속성을 말한다. 물은 다투지 않으며 자신을 희생하고 남을 위해 참고 살지만 그 대가는 가슴에 멍이 든다는 것이다. 물의 집인 호수가 시퍼런 것은 멍자국의 물이 모여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면 이를 노자의 생각과 합하면 어떤 내용이 될까. 물의 지혜로 살면 우린 가슴에 멍이 든다? 상징하는 의미가 유별나고 현실적이다.

김영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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