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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아침 빛 아래 장미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았다. 장미만큼 동서양을 통틀어 오래 사랑 받은 꽃도 드물다. 오래 보아 싫다기보다 친근해서 더 반갑다. 아침 장미가 몇 해 전 옛 페르시아 땅에서 만났던 시인의 무덤을 떠올렸다. 일찍이 괴테가 영원한 위대함을 지닌 시인이라고 극찬했던 허페즈(1320년경~1389년)가 그이다. 깊이 남아있는 페르시아 유전자 때문일지는 모르겠으나 지금도 텔레비전 뉴스를 시작할 때 앵커가 시를 한 편씩 읽을 정도로 이란 사람들은 시를 사랑한다. 장미와 포도주의 도시로 알려진 페르시아의 고도 시라즈를 방문했던 날은 드물게도 비가 내렸다.

강수량이 극히 적은 이 땅에 비가 내리는 건 축복이라고 했다. 시라즈의 허페즈 영묘에는 축제라도 열린 양 곳곳에서 몰려든 이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시인의 무덤을 참배하고 있었다. 하얀 대리석 관 위에는 누군가 올려놓은 장미꽃 한 송이가 점점이 뿌려진 꽃잎과 함께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대리석 관 위에 손을 올리고 저마다 눈을 감은 채 소원을 빌었다. 늙은 여인에서부터 검은 눈 맑은 어린 소녀까지 저마다 오래전 죽은 시인의 무덤을 만졌다. 참배를 마친 사람들은 담장 아래를 거닐며 허페즈의 시를 암송했다.

“붉은 장미는 꽃망울을 터뜨리고 밤 꾀꼬리는 그 내음에 취해 버렸으니/ 오! 술을 숭배하는 수피들아, 환희 속으로 초대하도다” “장미는 내 가슴에, 술은 내 손에, 연인도 있으니/ 세상의 군주도 나에게 그런 날에는 노예일지니// 이 집회에 양초는 가져오지 마오/ 오늘밤 우리 회중에 연인 얼굴의 달이 휘영청 밝았으니” “주모! 일어나 술잔을 주오/ 세상의 슬픔에 머리 위로 흙을 뿌려주오”

술과 연인에 대한 허페즈의 사랑 노래는 끝없이 이어진다. “아침은 피어오르고 구름이 장막을 친다/ 친구여! 아침 술, 해장술을 가져오려무나” “술 몇 잔 기울인다고 무슨 허물이 있을쏘냐/ 술은 포도나무의 피이지 너의 피가 아니지 않으냐” 지금 이란은 금주 국가이지만 호메이니가 이슬람혁명을 일으키기 전까지만 해도 테헤란은 중동의 파리라고 할 만큼 흥청거리던 도시였다. 그날 우리도 시인의 대리석관에 손을 올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 페르시아 후손들이 신기했던지 무엇을 빌었느냐고 물었다. 그냥 웃었다. 시인의 무덤을 나설 때 앵무새로 점을 치는 눈먼 노인을 만났다. 일행에게 새가 쪼아 건넨 카드에 적힌 허페즈의 시는 “지금 사랑하라!”였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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