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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순열의경제수첩] 가계부채 해법, 주택정책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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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05 00:03:15 수정 : 2017-06-05 00: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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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뇌관 가계부채는 ‘미필적 고의’ / 최경환 전 부총리 등 당국 수장 책임 / 1360조원 중 절반이 주택담보대출 / 실수요자 위주로 주택정책 확 고쳐야 한국 경제 뇌관, 가계부채는 ‘미필적 고의’의 결과다. 이래도 되나, 다들 불안감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아차 싶더라”고 했다. 2014년 8월 ‘금리인하 + 주택금융규제(LTV·DTI) 완화’가 단행될 때다. 기준금리를 내리는 마당에 대출규제 빗장까지 풀어버리면? 이후 상황은 안 봐도 비디오다. “노”(No)를 외치지 못한 신제윤 당시 금융위원장도 마음 한 구석은 찜찜했을 것이다. 그는 빗장을 풀기 직전까지 가계부채와 은행 건전성을 위해 규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미필적 고의를 숨긴 채 ‘지도에 없는 길’로 모두를 내몬 이는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였다. 박근혜정부 실세인 그가 경제팀 수장을 맡으면서 모든 게 뒤집혔다. LTV·DTI 규제를 두고 “한겨울에 여름옷을 입은 격”이라며 사자후를 토하자 관계당국 수장들은 풀잎처럼 누웠다. 대출규제 완화에 “신중해야 한다”던 한은은 “LTV·DTI 규제가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제약하는 측면이 있다”며 입장을 바꿨다. 주무기관 수장인 신 위원장도 “금융산업이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금융이 실물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며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이후 상황도 미필적 고의의 연속이었다. 이 총재의 한은은 최 부총리가 취임하자마자 기준금리를 내리더니 이후 네 번 더 끌어내렸다. 가계부채가 무섭게 느는데도 이 총재는 불안감을 감춘 채 “좀 더 지켜보자”는 말만 되풀이했다. 마침내 그가 “가계부채 문제를 가볍게 볼 수 없다”고 토로하긴 했으나 만시지탄이었다. 

류순열 경제부 선임기자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는 있었다. 1년 한시로 푼 LTV·DTI 규제를 다시 되돌리면 됐다. 그러나 바통을 이어받은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노”를 외치지 않았다. 뒤늦게 범정부 대책이라고 내놓은 작년 8·25가계부채 대책에서도 LTV·DTI 규제 강화안은 빠졌다. 투기수요를 억제하는 장치인 분양권 전매제한도 포함되지 않았다. 금융당국이 필요성을 주장했으나 국토교통부 반대에 막혔다고 한다. 가계부채 대책이 아니라 ‘집값 떠받치기 대책’이었다. 이후에도 가계부채는 두 자릿수 증가율을 지속했다.

가계부채 굴레를 만든 가장 큰 책임은 최 전 부총리에게 있다. 그러나 미필적 고의를 숨긴 채 바람 앞 풀잎처럼 누워버린 관계당국 수장들도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 부총리의 경제팀은 “빚 내서 집 사라”는 데 그치지 않고 혈세를 동원해 집을 여러 채 사는 투기세력도 도와줬다. ‘내 임기 동안에만 문제가 없으면 된다’는 식의 무책임(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이 아닐 수 없다.

가계부채가 뭐가 문제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박근혜정부 시절 “전혀 문제 없다”고 큰소리치는 금융당국 고위 인사도 있었다. 그러나 급증한 가계부채가 경제적 재앙으로 이어지지 않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적 재앙에는 언제나 가계부채의 급격한 증가가 선행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 7년간 미국 가계부채는 두 배로 늘었다. 1929년 대공황 전 9년 새 미국 도시지역 주택담보대출은 세 배 증가했다. 2014년 가을 국내에 소개된 책, ‘빚으로 지은 집’(House of Debt)은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한국 가계부채는 지난 9년 두 배 이상 늘었다. 저자(아티프 미안, 아미르 수피)는 “우리는 자주 빚이 얼마나 무서운지 잊고 산다”고 지적했다. 역사적 고찰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서민의 삶은 지금 ‘빚으로 지은 집’ 때문에 견디기 힘들도록 팍팍하다. 3월 말 기준 가계부채 1360조원 중 절반인 679조원이 주택담보대출이다.

문재인정부는 박근혜정부가 떠넘긴 골치 아픈 숙제를 풀 수 있을까. 문 대통령이 8월까지 종합대책 마련을 지시했다지만 뾰족수가 나올지 의문이다. 투기수요를 잠재우고 실수요자 위주로 주택정책을 확 뜯어고치지 않는 한 재탕, 삼탕 대책으로 변죽만 울릴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릴 만큼 여유롭지도 않다. 지금 당장 집값도, 부채도 뜀박질이 심상찮다. 금융감독당국 한 인사는 “투기수요를 잠재울 정책 시그널을 빨리 줘야 한다.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고 걱정했다.

류순열 경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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