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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1500년 변치 않는 따뜻한 위로

입력 : 2017-06-09 10:00:00 수정 : 2017-06-08 21: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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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는 동쪽 향해 서서 건너편으로 해가 떠오르면 천천히 자태를 드러낸다/온화하고 선명한 얼굴 쫓기듯 바쁜 일상처럼 분주한 여행길/잡아 세운다동틀 때 마주쳤다 한눈에 반하다
충남 서산 마애삼존불의 미소가 가장 아름다운 때는 아침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행상길을 떠나는 이들에게 큰 위안이 됐다.
연신 질겅이며 초원을 느릿느릿 이동한다. 너른 들판과 구릉을 거니는 모습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주위의 시선은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사람이 지나가도 쓱 쳐다보기만 할 뿐이다. 좁디좁은 우리에서만 생활하는 다른 소와는 다르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 이들의 일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끝없이 이어진 구릉과 녹지대를 걸으며 먹는 것이 전부다.

한가로이 지내는 이들의 모습에 여행자의 발걸음도 속도를 늦춘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이들의 여유로운 모습이 잠깐이라도 부럽다면, 잠시 내려놓자. 평소에도 정신없이 바빴다. 여행까지 와서 바삐 움직일 이유는 없다. 한두 군데 더 보지 않는다고 문제가 될 건 없다. 아쉬우면 다음에 또 오면 된다.

그렇게 가는 봄, 오는 여름의 중간에 서서 느릿느릿 주위 풍경을 돌아보자. 바위에 새겨진 오래된 불상의 아름다운 미소와 구부러진 고목 기둥의 곡선미 등 평소 눈에 들어오지 않던 풍경을 안을 수 있고, 초원에서 되새김질하는 소를 보며 그동안 어색했던 여유와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마애삼존불에서 1㎞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보원사지는 한 때 승려만 1000여명에 이를 정도로 큰 절이었다. 당간지주와 오층석탑 등은 백제와 신라 때, 법인국사의 부도와 부도비는 고려시대 때 유물이다.
개심당 심검당은 휘고 뒤틀어진 나무를 다듬지 않고 기둥으로 사용해 자연미가 와닿는다.

아침에 마애삼존불을 찾는 것부터가 충남 서산으로 떠나는 느린 여행의 시작이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백제 수도 부여 또는 공주를 가거나 중국으로 가는 상선을 타러 가는 길목이다. 1500여년 전 짐을 이고 이 부근을 지나던 이들에게 절벽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존재는 의지의 대상이었다. 더구나 그 불상은 세상 무엇보다 따스한 미소를 짓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가는 길은 언제나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다. 강도나 산적을 만날 수 있고, 배를 타면 사고를 걱정해야 한다. 이런 행상길에서 마주하는 저 미소는 상인들에게 큰 위안이 된다. 그 미소가 선명할수록 안전하고, 돈을 많이 버는 행상길이 될 것이란 희망을 품게 된다. 그 미소가 가장 아름다운 때가 아침이다. 마애삼존불은 동편을 바라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동동남 방향으로 동짓날 해뜨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건너편 산 위로 모습을 드러낸 해가 불상을 비추는 아침에 그 미소가 가장 선명하다. 볼이 터질 듯 웃음 짓고 있는 ‘백제의 미소’는 앞으로도 미소를 잃지 않을 듯싶다.

지금은 계단이 있어 불상 바로 앞까지 가서 삼존불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이를 발견하는 과정은 우연에 가까웠다. 삼존불 인근에 있는 보원사 관련 조사를 하러 온 관계자에게 주민들이 “산에 두 마누라를 데리고 사는 산신령이 있다”는 얘기를 전했고, 주변을 조사해 삼존불을 발견했다. 삼존불 중 산신령은 가운데의 석가여래입상이고, 두 마누라는 왼쪽의 제화갈라보살, 오른쪽의 미륵반가사유상을 말한다.
개심사는 4월말 활짝 피는 겹벚꽃과 청벚꽃으로 유명하다. 특히 6월초까지도 봄의 여운을 선사하듯 겹벚꽃 한두 송이가 남아 있다.
여행객이 개심사 연못의 돌다리를 건너고 있다.
충남 서산에선 길을 가다 곳곳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방목된 소들을 볼 수 있다. 연신 질겅이며 초원을 느릿느릿 이동하고, 너른 들판과 구릉을 거니는 모습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서산 한우목장으로 한우 보호 차원에서 외부인은 출입할 수 없다.

마애삼존불에서 1㎞가량 떨어진 곳에 보원사지가 있다. 한때 승려만 1000여명에 이를 정도로 큰 절이었다. 당간지주와 오층석탑 등은 백제와 신라 때, 법인국사의 부도와 부도비는 고려 때 유물이다. 백제와 신라, 고려 때까지 사찰이 번성했음을 알 수 있는 흔적이다. 절터 뒤편에 장승이 서 있는데, 개심사까지 이어진 산길로 한 시간가량 걸린다.

차로 개심사 가는 길에는 초원과 구릉이 이어져 있다.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다. 소들이 훑고 지나간 자리다. 농협중앙회 한우개량사업소로 서산 한우목장으로 부른다. 전체 규모가 21㎢로 서산 운산면 일대에 넓게 퍼져 있다. 한우 보호 차원에서 외부인 출입은 되지 않지만 길을 가다 곳곳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방목된 소들을 볼 수 있다. 개심사는 일주문을 통과한 후 펼쳐진 소나무 숲길이 고즈넉함을 더한다. 개심사는 4월 말 활짝 피는 겹벚꽃과 청벚꽃으로 유명하다. 특히 6월 초까지도 봄의 여운을 느낄수 있게 겹벚꽃 한두 송이가 남아 있다. 대웅전 옆의 심검당이 눈길을 끈다. 휘고 뒤틀어진 나무를 다듬지 않고 기둥으로 사용해 자연미가 와닿는다.
해미읍성은 조선 때 지어진 성으로 옛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 성을 한바퀴 둘러보면 소나무와 활짝 핀 노란 금계국이 방문객을 맞는다.

해미읍성 성벽을 쌓은 돌엔 공주, 청주, 임천, 서천, 부여 등 희미하게 고을명이 새겨져 있다. 고을별로 일정 구간의 성벽을 나누어 쌓게 한 뒤 이를 책임지도록 한 ‘공사 실명제’의 흔적이다.
개심사에서 해미읍성으로 방향을 잡는다. 조선 때 지어진 성으로 옛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 성 바로 앞까지 바다와 연결된 물길이 이어져 서해안 방어의 요충지 역할을 한 곳이다. 이순신 장군도 이곳에서 열 달 정도 근무를 했다. 해미읍성은 병영 외에도 조선 말 읍성 가운데 호야나무에서 많은 천주교인들이 처형당했다. 이를 위로하기 위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다녀갔다.

성을 한바퀴 둘러보면 소나무와 활짝 핀 노란 금계국이 방문객을 맞는다. 해미읍성의 정자 청허정 인근엔 역대 대통령 얼굴을 조각한 장승이 서 있었는데, 지금은 다 없어져 아쉬움이 남는다. 해미읍성을 둘러보고 정문인 진남문으로 나올 땐 성벽을 쌓은 돌을 유심히 봐야 한다. 공주, 청주, 임천, 서천, 부여 등 희미하게 고을명이 새겨져 있다. 고을별로 일정 구간의 성벽을 나누어 쌓게 한 뒤 이를 책임지도록 한 ‘공사 실명제’의 흔적이다.

서산=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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