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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정의 원더풀 다뉴브강] 히틀러의 유대인 말살…아픈 역사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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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18 09:00:00 수정 : 2017-06-15 16: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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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5대 운하인‘라인 마인 도나우’라인강∼다뉴브강/171㎞ 연결 이명박 전 대통령 이곳을 찾아 한반도 대운하 구상했다는 곳/나치대회 열린 체펠린 광장 ‘제노사이드법’제정된 현장/ 2차대전 후엔 전범재판 열려
크루즈 밖 경치가 사라지고 높다란 시멘트벽이 가로 막아 섰다. RMD(라인-마인-도나우) 운하는 마인강 상류의 밤베르크에서 출발해 뉘른베르크를 거쳐 도나우강 상류의 켈하임으로 이어진다. 총연장 171㎞로 14개국의 유럽 국가가 이 운하를 통해 연결된다.
배가 도크 안으로 완전히 진입하면 배 후미의 갑문을 닫아 수위를 조정한 다음 다시 갑문을 열어 배가 출발한다.
뉘른베르크는 나치 시절에는 전당대회가 열린 곳이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전범재판이 열린 곳이다. 원형경기장과 같은 붉은 벽돌 건물이 있는 곳에서 제국 전당대회가 열렸다.
크루즈는 유유히 강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 아침 식사를 마친 승객들은 각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데크 위에서 물결 따라 흐르는 주변을 바라보는가 하면 라운지에서 다른 승객들과 수다가 한창이다. 서로 낯설지 않을 만큼 선상의 시간도 강물처럼 흘렀다.

카페테리아 한 편에서 차를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밖을 보니 주변 경치가 사라지고 높다란 시멘트벽만이 보인다. 세계 5대 운하의 하나인 RMD(라인-마인-도나우)운하에 들어선 것이다. 크루즈는 도크 안에 들어와 있다. 수심 차이에 따라 수위를 맞추려 갑문을 열어 도크 안에 배가 진입한 것이다. 배가 도크 안으로 완전히 진입하면 배 후미의 갑문을 닫아 수위를 조정한 다음 다시 갑문을 열어 배가 출발한다고 한다. 이런 과정으로 크루즈는 도나우강을 거슬러 계속 운항할 수 있다고 한다.

RMD 운하는 독일의 라인강과 라인강의 최대 지류인 마인강, 그리고 다뉴브강을 연결하는 171㎞의 운하이다. 마인강변의 작은 베네치아라 불리는 물의 도시 밤베르크에서 시작해 뉘른베르크를 거쳐 다뉴브강의 켈하임에 이르는 운하를 통해 흑해에서 북해까지 중부 유럽 대륙을 관통하는 총 3500㎞의 물길이 하나로 이어진다. 우리에게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하고 한반도 대운하를 구상했다고 해서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찬반 여부를 떠나 오랫동안 정치적 논란의 중심이었고, 최근까지 환경파괴와 수질오염의 대명사가 되고 있는 4대강 사업을 떠올리면서 착잡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뉘른베르크 카이저부르크성의 건물들.
카이저부르크 성벽을 따라 산책을 하니 중세의 무거운 시간의 깊이가 느껴진다. 뉘른베르크 역사탐방로는 성채에서 시작해 유서 깊은 건축물과 역사적인 장소로 일행을 안내한다.
뉘른베르크 중앙 광장에 이르면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아름다운 분수를 만날 수 있다. 물을 시원하게 뿜어주는 본래의 기능보다는 40명의 인물이 조각돼 있는 황금빛 탑에 가깝다. 14세기에 만들어졌다는 이 분수대에는 철학자와 예술가부터 모세와 7명의 예언자가 조각되어 있다.
관광중심지인 뉘른베르크 구시가지 중앙 광장.

착잡한 기분을 떨치고 도크 안에 갇혀 갑문이 닫히는 장면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갑문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오리떼 가족이 보인다. 우리와 달리 상황을 몰라 이리저리 헤매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엉겁결에 가던 길이 막혀 얼마나 놀랐을까. 다시 갑문이 열리자 놀란 오리 가족들도 황급히 물길을 헤치며 도크를 빠져나간다. 그 옆으로 크루즈가 조용히 강물을 헤치며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오전을 여유롭게 보내고 점심시간이 돼서야 목적지인 뉘른베르크에 도착했다. 점심을 마치고 선상에서 제공하는 관광 프로그램을 따라나서기로 했다. 특별히 제공되는 선택 관광으로 2차 세계대전 역사 투어와 나치 기록실 관람이 있다. 뉘른베르크는 나치의 군사독재 시절에는 전당 대회가 열린 곳이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는 전범 재판이 열린 곳이다. 잔인한 역사의 현장을 굳이 찾고 싶지 않아 관람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의 과거를 끊임없이 반성하며 같은 아픔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독일인들의 노력을 볼 때마다 과거를 부정하고 주변국을 불편하게 하는 우리 이웃 국가를 떠올리게 한다.

뉘른베르크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자 공업의 중심지로 유명하다. 뉘른베르크의 옛 이름인 ‘네론베르크(neronberg)’는 로마의 네로 황제가 이곳의 언덕에 올라 도시를 건설하라고 명령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도시의 구시가지는 전체 5㎞나 되는 원형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성벽 밖으로는 현대적 도로와 건물들이 이어져 있다. 성벽을 경계로 과거와 현재가 매력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이곳은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 징어’의 배경 도시이며 르네상스 최고의 독일 화가였던 알브레히트 뒤러가 활동했던 도시다.
카이저부르크성의 둥그스름한 짐벨탑은 주변을 감시하기 위해 세워졌다. 탑에 오르면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거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중앙 광장에 있는 성모 성당은 14세기에 지어진 고딕 성당이다. 유대회당인 시나고그를 헐어버리고 그 장소에 지었다. 카를 4세와 7명의 선제후 인형들이 시계에서 나온다.
가이드가 뉘른베르크의 역사, 문화를 설명하고 있다.

중세에는 제국의 수도로서 제국의회가 열리면서 제국법인 금인칙서가 발표된 도시다. 현대에 와서는 나치 전범재판이 열린 역사적 도시이다. 가이드를 따라 나선 시내투어는 먼저 독일의 역사를 따라 나치 퍼레이드, 심판의 장소로 안내됐다. 버스가 도착한 곳은 원형경기장과 같은 붉은 벽돌 건물이다. 히틀러가 사랑했다던 도시에 남은 나치즘의 흔적이다. 멀지 않은 곳에 히틀러가 160만명의 군중 앞에서 연설했던 체펠린 광장이 있다. 1935년 이곳 전당 대회에서 ‘뉘른베르크 법’이 제정됐다. 이 법은 제노사이드, 즉 인종말살법이다. 뉘른베르크에 거주하던 당시 9000여명의 유대인이 종전 무렵에는 40여명만 남았다고 한다. 잔학한 역사 현장에 서 있는 것이다. 지금 그 현장에는 롤러 블레이드를 타고 떠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현장을 보러온 관광객들의 숙연함이 묘하게 엉켜있다.

곧이어 버스는 관광중심지인 구시가지로 향했다. ‘카이저부르크(Kaiserburg)’는 1050년 북쪽 언덕 위에 세워진 황제의 성이다. 전쟁으로 여러 번 부서졌고 현재의 모습은 15~16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다시 축조된 것이라고 한다. 주변을 감시하기 위해 세워진 둥그스름한 짐벨탑에 오르면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거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성벽을 따라 걸으면서 중세의 무거운 분위기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뉘른베르크 역사탐방로는 성채에서 시작해 유서 깊은 건축물과 역사적인 장소로 일행을 안내한다. 도시 성벽을 따라 걸어 내려오니 화려하고 잘 장식된 교회들, 동화에서 본 듯한 그림 같은 우물들, 옛 국제교역의 흔적들이 보인다. 옛 모습에서 어느덧 현대로 이끈 발걸음은 과거에서 현대로 시간 여행을 한 듯하다.
뉘른베르크 시내에서 결혼식을 준비하는 하객들
뉘른베르크 구시가지는 전체 5㎞나 되는 원형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성벽 밖으로는 현대적 도로와 건물들이 이어져 있다. 뉘른베르크 시내버스 투어를 위한 안내판.

이 도시는 ‘뉘른베르크 달걀’이라 불리는 부유한 계층의 유명한 휴대용 회중시계에서 보듯, 수백년 전에는 정밀기계의 중심지였다. 종교개혁을 이끈 마틴 루터에 의해 ‘독일의 눈과 귀’로 불리었던 도시이다. 이 도시에 21개 인쇄소가 있어 번역성서가 신속하게 전파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독일 최초의 신교 교회인 ‘성 로렌츠 교회’와 ‘성 제발트 교회’가 세워진 도시이다. 중앙 광장에 이르면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아름다운 분수’를 만날 수 있다. 물을 시원하게 뿜어주는 본래의 기능보다는 40명의 인물이 조각돼 있는 황금빛 탑에 가깝다. 14세기에 만들어졌다는 이 분수대에는 철학자와 예술가부터 모세와 7명의 예언자가 조각되어 있다.

광장에서 프라우엔 성문(Frauentor)으로 이어지는 구시가지에는 수많은 골목길이 있다. 창문들이 아름다운 그림 같은 집들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서 있다. 목재골격의 집들과 상점들을 거닐며 뉘른베르크의 새로운 기억을 쌓는다. 과일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선 장터에서 과일을 사고 광장 수돗가에서 씻어 먹으며 추억을 만든다. 현대사에 남긴 오점보다는 환한 웃음으로 뛰노는 아이들과 아름다운 역사적 기념물을 기억에 남기며 뉘른베르크를 떠난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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