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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문화재] 가슴 벅찬 감동 고구려 고분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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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14 21:19:30 수정 : 2017-06-14 21: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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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선과 형태가 한데 어울려 가슴 벅차게 다가오면서 위대한 걸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압도감으로 황홀해졌다. 먹색의 장엄한 윤곽선 속에 붉은색, 노란색, 녹색의 간단한 물감을 칠했을 뿐인데 여기서 오는 진실감과 사실성은 이집트 고분벽화와 비교할 수 없다.”

6·25전쟁의 포화가 한창이던 1951년, 화가 정현웅(1911~1976)은 고구려 고분벽화를 모사하면서 느낀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캄캄한 고분 속에서 때로는 축축한 바닥에 넘어지고, 촛농이 종이 위에 타들어간 열악한 조건이었지만, 육체적·정신적 고통도 이겨낼 만큼 눈앞에 펼쳐진 고구려인의 숨결은 가슴 벅찬 감동 그 자체였다.

정현웅이 모사한 벽화는 황해도 안악 1·2·3호 무덤과 평안남도 강서무덤(사진)이었다. 고구려 고분벽화 중에서도 당대인들의 생활상과 우주관을 다채로운 문양과 색채로 가장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고 평가받는 작품들이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삼국시대 생활사박물관이자 우리 미술의 기원이 담긴 세계유산이다. 이 벽화들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화가들에 의해 한번 모사된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가 결핍된 그들의 작품은 모사를 위한 모사, 박제화된 그림이었을 뿐이다.

반세기 전 정현웅이 보았던 벽화는 지금 어떠한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언젠가 지금의 세대 또는 후손들이 실물을 보게 되었을 때, 1000년의 시간을 넘어 그가 받았던 감동을 또다시 느낄 수 있을 만큼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을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정현웅이 외부와 단절된 채 모사를 마치고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이미 전쟁은 중단되었고 휴전상태였다. 남한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에 발을 동동 굴렀지만 결국 돌아갈 수 없는 영어(囹圄)의 몸이 되고 말았다. 민족미술의 혼을 그림에 담고자 한 노력의 결과치고는 너무도 가혹한 시대적 운명이었다. 분단의 상징이기도 한 그의 유작인 고구려 고분벽화 모사도는 현재 평양 조선미술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황정연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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