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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꿔가는 비혼여성의 당당한 삶

입력 : 2017-06-17 03:00:00 수정 : 2017-06-16 21:5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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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못 간 노처녀’ 따가운 시선은 옛말 / 경제력 갖춰 자립하고 활발한 사회운동 / 도시의 독특한 개성과 분위기 만들어가 / 유럽 비혼여성의 원조 英 엘리자베스 1세 / 작가 브론테 자매·간호사 나이팅게일 등 / 결혼 대신 다른 길 선택… 자신의 운명 개척 / 싱글녀 삶과 그녀들이 일으킨 사회변화 담아
레베카 트레이스터 지음/노지양 옮김/북스코프(아카넷)/1만8000원
싱글 레이디스/레베카 트레이스터 지음/노지양 옮김/북스코프(아카넷)/1만8000원


어린 시절 즐겨 읽었던 서양 소설 ‘빨강머리 앤’, ‘제인 에어’, ‘작은 아씨들’, ‘초원의 집’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개성 있고 재기발랄한 주인공들이 결혼을 하면서 이야기가 끝난다는 것이다.

뉴욕의 여성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이를 못마땅해하면서 책을 썼다. 20대 초반에 거의 대부분 결혼한 어머니 세대와 달리 1975년생인 저자는 20대 내내 결혼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공부와 일에 전념하다 35살에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친구들도 결혼에 관심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때 한국에서 미드 ‘섹스 앤 더 시티’가 붐을 일으켰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 덕에 비혼 여성의 이미지가 상당 부분 부풀려졌다. 명품 옷과 아찔한 하이힐이 싱글 여성의 상징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홀로 자립적으로 살아가는 그녀들이 행복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통상 시집 못 간 노처녀는 처량하다는 속세 이미지와는 딴판으로, 드라마에선 아주 심플하고 멋있게 묘사되었다.

뉴욕에서 10년 이상 살아온 저자는 도시의 독특한 개성과 분위기를 만든 것은 여성, 특히 싱글 여성들이라고 주장한다. 예전부터 자립해 살고 싶은 여성들은 도시로 몰려들어 돈을 벌고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자연히 이들을 위한 인프라가 생겨났고 각종 사회운동, 인권운동도 활발해졌다. 혼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게 되자 비혼 여성들은 점점 늘어났다. 남자들은 끼어들지 못할 찰떡같은 여자들의 우정도 그렇다. 이 책에서는 그 어떤 관계보다 끈끈하고 든든한 여자들의 우정을 보여준다.

미국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가 화려한 4명의 여자 뉴요커의 삶을 그려낸 작품(위쪽)이라면, SBS의 2014년 예능프로 ‘달콤한 나의 도시’는 서른을 코앞에 둔 미혼 여성 4명의 속내를 담은 이야기다.
‘제인 에어’를 쓴 19세기 소설가 샬럿 브론테는 남편의 시기 질투에도 절친 엘렌 너시와 편지를 교환한다. 여자의 우정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늘 붙어 다니는 단짝 친구를 일컫는 ‘찰떡같은 사이’가 여자들 인생에는 한두 명쯤 있기 마련이다. 저자가 인터뷰 한 앤과 아미나도 그런 사이다. 이들은 남자친구의 존재와 상관없이 서로를 ‘내 사람’이라 부르며 삶을 공유한다.

저자는 여자들의 우정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몇 번 안 되는 연애를 할 때면 내가 사라지고 에너지가 고갈되는 느낌이었는데 여자친구들과 있으면 나의 부족한 점이 채워지고 내 삶의 다른 영역으로 건강한 관계가 퍼져나갔다. 더 일 잘하는 나, 더 자기 확신 있는 나, 더 공정한 평가를 받는 나가 되었다.”

유럽에서 비혼 여성의 원조는 영국 튜더 왕조의 마지막 군주인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였다. 정략적 혼담도 여러 차례 오갔지만 끝내 결혼을 거부했다. “짐은 국가와 결혼했다.” 간곡히 결혼을 청원하는 의회에 여왕이 한 말이다. 여왕은 “나는 남편이라는 주인을 두지 않은 한 여성으로서 여기에 있겠다”고도 했다. 결혼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던 시대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성들이 많았다.

자매 작가 앤과 에밀리 브론테, 시인 에밀리 디킨슨, 최초의 여의사인 엘리자베스와 에밀리 블랙웰 자매,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그렇다.

저자는 “그녀들은 독신을 고수한 여성은 결혼한 여성보다 훨씬 더 자신의 운명을 잘 개척할 수 있고 특별한 경우 역사에 발자취를 남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말한다.

2012년 미국 대선에서 싱글 여성의 67가 버락 오바마에게 몰표를 던져 그를 백악관으로 인도했다. 기혼 여성들은 미트 롬니에게 더 많은 표를 줬다. 보수진영은 전통적 가족관계에서 멀리 떨어진 독신 여성들의 존재감을 두려워한다. 사회적, 정치적 파열을 알리는 결정적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혼인율이 떨어지고 결혼 연령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비혼, 만혼 경향은 더 나은 짝을 만날 가능성을 높여 결과적으로 결혼의 질을 높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결혼을 덜 하거나 늦게 하는 뉴욕, 매사추세츠,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등지의 이혼율이 미국에서 가장 낮은 것이 그 증거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일과 가정을 함께 챙기기 어려운 사회구조에서 꼭 아이를 낳아야 할까”라고 반문하면서, “여성이 이 세상에 자취를 남길 방법은 수백만 가지가 있고, 아기는 그중 하나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스토리 가운데 하나 빠뜨린 게 있다. 가정의 즐거움 또는 아이들의 재롱으로 가정이 연출하는 행복함은 왜 빼놓았을까. 저자는 “독신 여성의 행복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강변하지만, 그녀 역시 가정을 가진 여성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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