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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움츠린 어깨펴고 희망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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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18 10:00:00 수정 : 2017-06-18 09:4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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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서 위축됐던 아이들, 학교 적응 돕기 위해 시작 / 신분노출 꺼려 모집 어려움… 스포츠개발원 팔 걷고 도와 / 서울 등 전국서 120명 참가 / 야구장서 뛰며 한층 밝아져 / 재능있는 단원 엘리트팀 연결 / 아동 미래까지 아낌없이 지원
지난 3월 서울 멘토리야구단에서 야구를 시작한 김철진(12)군의 고향은 중국 길림이다. 10여년 전 철진이 어머니는 가족과 함께 두만강을 넘었다. 중국에 터전을 마련한 부모님은 그곳에서 철진이를 낳았고 지난해 1월 한국에 들어왔다. 중국에서 학교에 다닐 때 운동이라고는 오직 축구밖에 모르던 철진이는 요즘 야구의 재미에 흠뻑 빠졌다. 어머니 권유로 멘토리야구단을 알게 된 철진이는 면접을 통과한 뒤 매주 일요일이면 운동장에 나온다. 철진이는 “친구들이랑 티볼게임하면서 피자 내기하는 게 제일 재밌다”며 “나중에 커서 유명한 투수가 되고 싶다”고 수줍게 꿈을 얘기했다.

멘토리야구단에는 철진이와 같은 탈북민가정 자녀 6명이 뛰고 있다. 저소득층·다문화 가정 자녀 등으로 꾸려지던 멘토리야구단은 올해부터 탈북민 가정 아이들 위주로 모집했다. 이 아이들은 대부분 북한에서 자라지 않았다. 탈북한 부모가 중국이나 한국에서 낳은 아이들이다.

멘토리야구단은 2011년부터 프로야구 선수 출신 양준혁(48) 해설위원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양준혁 야구재단에서 운영한다. 양준혁 야구재단 정지민 대리는 “창단 때부터 탈북민 가정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치고 싶었는데 접촉이 쉽지 않았다”며 “스포츠개발원과 연계한 덕분에 탈북민 가정 아이들과도 함께 야구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자신감 키워주고 꿈 만들어준 야구

부모님과 재단 관계자들은 야구를 시작한 뒤 아이들의 표정이 확연히 밝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2004년 탈북해 서울에 살고 있는 최모(39)씨는 지난해 말 지역경찰서 보안과 담당형사에게 아들 김모(11)군의 멘토리야구단 참여를 권유받았다. 최씨는 처음에는 망설였다. 최씨는 “탈북 가정 아이들끼리 모이면 혹시나 북한 말투를 배워오거나 괜히 싸우고 오진 않을지 걱정부터 들었다. 아이한테 말해보니 하고 싶다고 하기에 보냈다. 2∼3번 나가다 말겠지 싶었는데 이제는 일요일 오후면 만사 다 제쳐놓고 유니폼 입고 나간다”며 “야구 하기 전에는 소극적이었는데 요즘에는 배짱이 두둑해졌다. 학업을 게을리하면 야구단 안 보내겠다고 하니 공부도 예전보다 더 열심히 한다”고 만족했다.

멘토리야구단은 김군의 삶을 바꿔놨다. 김군은 “유니폼을 입고 글러브를 끼니 진짜 야구선수가 된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낯설었는데 친구, 형들이랑 같이 야구 경기를 하고 친해졌다”며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티볼을 하는데 친구들이 잘 못할 때마다 여기서 배운 대로 가르쳐주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친구들이 멘토리야구단 하는 걸 부러워한다. 나중에 진짜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서울 멘토리야구단 선수들이 지난 11일 서울 노원구 한국스포츠개발원 운동장에서 야구를 하고 있다.

매주 일요일마다 코치로 활동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정 대리는 “처음에는 다들 모르는 사이여서 서먹서먹했지만 아이들이 야구 게임을 몇 번 하니 금방 친해졌다. 매주 야구만 하지 않고 물놀이 등 캠프도 가는 덕분에 이제는 서로 장난치면서 잘 지낸다”며 “대신 나이가 어린 친구가 많은 형에게 깍듯하게 하는 등 룰은 철저히 지키게 한다. 또 야구로 협동심과 희생정신을 가르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멘토리야구단, 국가대표 지원팀을 만나다

양준혁야구재단은 지난해 말부터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스포츠개발원과 손잡았다. 스포츠개발원은 37년 전통을 자랑하는 국내 최고 권위 스포츠 과학 연구기관이다. 스포츠 과학을 국가대표팀에 적용해 지난해 브라질 리우올림픽에서 양궁 대표팀이 전관왕 신화를 이루는 데 기여했다. 국가대표 선수들을 지원하는 스포츠개발원이 이번에는 멘토리야구단을 위해 팔을 걷었다. 스포츠개발원은 서울지방경찰청과 남북하나재단 추천을 받아 선수들을 뽑았다. 스포츠개발원은 단원 수급뿐 아니라 스포츠 과학 지원 그리고 직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후원금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멘토리야구단 돕기에 나섰다.

멘토리야구단원들은 지난 4월16일 일일 국가대표 체험을 했다. 국가대표 선수들과 같은 방법으로 체력을 측정하고 심박변이도 검사를 받아 스트레스 지수를 알아봤다. 스포츠개발원 송홍선 책임연구원은 “또래 엘리트 선수들과 비교할 때 멘토리야구단원들은 전반적으로 심폐지구력이 약하고 체지방률이 높은 편이었다”며 “매주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지구력을 기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송 연구원은 “야구는 개인 플레이와 팀 플레이가 적절히 섞인 스포츠다. 협동심과 자립심을 동시에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한 어린이가 지난 4월 한국스포츠개발원에서 체력측정을 받고 있다. 체력측정은 현역 국가대표 선수들이 받는 방식과 동일하게 진행됐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제공

멘토리야구단원들이 또래 친구들에 비해 사회적 적응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결과도 나타났다. 스트레스 지수를 측정한 스포츠개발원 노용구 선임연구원은 “대부분에서 만성적인 스트레스가 보였는데 이는 사회적응력이 떨어지는 데서 기인한 것 같다”며 “이 아이들에게 스포츠는 사회적 인성을 좋아지게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 대리는 “구체적으로 체력과 사회성 등 수치가 나오니 야구를 가르치면서도 한 번 더 세심하게 신경 쓰게 된다”고 말했다. 스포츠개발원은 이번 기수의 활동이 끝나는 연말쯤 한 번 더 측정해 각종 지표를 통해 단원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재능 있는 단원 엘리트 선수 진로 열어주고파

2011년 시작한 멘토리야구단은 서울을 시작으로 성남, 양주, 시흥, 대구 순으로 창단됐다. 유소년기부터 야구단에서 활동한 단원 중 가장 나이 많은 학생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됐다. 이들을 위해 재단은 2013년 청소년 멘토리야구단을 만들었다. 이들까지 포함하면 현재 전국에 약 120명의 단원이 멘토리야구단에서 야구를 하고 있다. 재단은 네트워크를 활용해 재능이 있고 본인이 원하는 단원을 엘리트팀으로 연결해준다. 정 대리는 “성남 멘토리 야구단에서 뛰던 학생은 최근 전주고 야구부에 진학해 고교야구 무대를 누비고 있다. 또 서울 멘토리야구단원으로 활동하던 한 단원은 야구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고 해서 마포구 리틀야구단으로 보냈다”며 “재단에서 힘닿는 한 아이들 진로를 위해 할 수 있는 부분은 도와준다”고 설명했다.

최형창 기자 call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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