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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데스노트와 문자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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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18 21:32:15 수정 : 2017-06-18 21: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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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노트에 이름이 적힌 인간은 죽는다.”

2003년 출간돼 3000만부가 팔린 일본 만화 ‘데스 노트’ 이야기다. 사신(死神) ‘류크’가 인간계로 떨어뜨린 데스노트를 고교생 ‘라이토’가 줍는다. 이 노트에 누군가의 이름을 적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라이토는 범죄자가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라이토가 데스노트로 전 세계의 범죄자를 죽여나가자 범죄가 급감했고, 라이토를 ‘키라(킬러)’라며 숭배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키라의 존재를 깨달은 경찰은 라이토를 잡기 위해 수사본부를 구성한다. 수사본부에 소속된 명탐정 ‘L’과 라이토가 서로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심리전을 펼치는 부분은 독자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재호 정치부 기자
#2. ‘이게 다 야당 때문이다. 거하게 맞아보자꾸나. 이모 의원 010-××××-××××, 김모 의원 010-××××-××××, …’

대통령 취임 이후 계속되는 국회 인사청문회로 정신이 없을 때였다. 친한 친구들이 모인 메신저 채팅방에서 현역 의원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나열된 메시지가 공유됐다. 대개 보수정당 의원들이었고, 청문위원들도 포함됐다. 국무위원 후보자 검증을 위해 청문회에 나선 의원 중 일부는 ‘대통령이 내정한 후보자를 흠집 낸다’는 이유로 ‘문자폭탄’의 타깃이 됐다. 문자폭탄을 맞은 의원들은 “민주주의 정신에 맞는 것인가”라고 호소했고, 반대 진영에서는 “문자폭탄이라는 말이 테러를 연상시킨다”며 “문자폭탄이 아닌 ‘문자행동’으로 명명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문자폭탄을 맞은 한 의원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문자폭탄에 대해 “완전한 인격살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청문회에 들어갔다 나왔더니 수천개의 문자폭탄이 와 있었다”며 “휴대전화를 아예 초기화해 버리고 싶었지만 중요한 내용들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고, 폭탄들을 일일이 지우는데 만감이 교차했다”고 말했다. 보수정당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문자폭탄을 받은 의원님이 흥분해서 경찰에 고소하겠다고 소리를 치는데 말리느라 애를 먹었다”며 “득을 볼 게 없다고 몇번을 설득한 끝에 겨우 단념시켰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의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가 적힌 메시지를 보면서 데스노트가 떠올랐다. 이름과 전화번호가 알려져 불특정 다수로부터 문자폭탄을 받는 현실이 만화 데스노트의 설정과 오버랩됐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최근 들어 전화번호를 바꾼 국회의원들이 부쩍 늘었다. 한국당의 한 초선 의원은 “전화기를 하나 갖고 있는 의원들은 (문자폭탄 때문에) 거의 번호를 바꾸고 있다”고 전했다.

국민이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법에 따라 정해진 청문절차에 임하는 의원들에 대한 문자폭탄은 민주적인 정치 참여가 아니다. 인신공격은 합리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국정파탄에 대한 국민적 실망은 이해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문자폭탄이 아닌 선거로 물어야 한다.

#3. 데스노트의 결말(스포일 주의), 라이토의 정체가 결국 드러난다. 사신 류크는 데스노트에 라이토 이름을 적고, 라이토는 최후를 맞이한다.

이재호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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