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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스페셜 - '우주' 이야기] (17) 아폴로 프로젝트와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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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19 10:33:14 수정 : 2023-11-12 21:3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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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1960년대, 그리고 케네디 대통령의 공언\

1960년대의 미국은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찬반으로 여론은 양분되어 있었고, 평등과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시민들의 투쟁도 정점에 서 있었다. 한편에서 구 소련과 우주개발 경쟁에서는 뒤처지고 있었다. 

1962년 당시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인상 깊은 연설을 남긴다. 1960년대 말까지 인류를 달에 보내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그의 연설은 미국민을 결집시켰다. 미국은 결국 1969년 여름 세계 최초로 인간을 달에 보낸다.

 

미국의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 닐 암스토롱이 세계 표준시로 1969년 7월21일 오전 2시56분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디고 있다. 출처=미국항공우주국(NASA)

◆비극적인 첫 발걸음, ‘아폴로 1호’

 

달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미국은 1950∼60년대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며 ‘머큐리’(Mercury)와 ‘제미니’(Gemini) 프로그램을 성공시키며 유인 달 탐사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첫 유인 달 탐사 임무가 비극이 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67년 1월27일. 3명의 우주비행사가 유명을 달리했다. 시험 중이던 ‘아폴로 1호’ 우주선 안에 화재가 일어나 목숨을 잃은 것이다.

 

미국 최초로 ‘제미니 3호’를 타고 지구를 선회했던 버질 그리솜(Virgil Grissom), 미국 최초의 우주유영에 성공했던 에드워드 화이트(Edward Higgins White), 제미니 3호와 4호를 뒤에서 지원했던 로저 차피(Roger Chaffee)는 몇주 후 발사될 우주선에 탑승해 일련의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수시간 동안 문제없이 우주선의 통신 문제 등을 해결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부에서 불꽃이 튀며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시험은 실제 비행 상태를 모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주선의 출입구는 닫혀있었다. 선내는 실제 우주선처럼 순수한 산소로 가득 차 있었다. 불꽃은 이 산소를 만나 걷잡을 수 없이 큰 불로 타올라 버렸다.

 

화재로 인해 손상된 ‘아폴로 1호‘의 내부 모습. 출처=미국항공우주국(NASA)

우주선의 출입구는 안에서 열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는데 문을 여는 데 약 90초가 걸렸다. 그러나 화염이 선내를 집어삼키며 선내 압력이 높아졌고, 우주비행사들은 그럴 수 없었다. 우주선 밖에 있던 동료의 긴급한 구조 노력에도 화재가 일어난 지 약 30초 만에 우주선은 파열돼 버렸다. 3명의 우주비행사들은 질식으로 숨을 거뒀다.

 

훈련 중 화재로 숨진 ‘아폴로 1호’의 우주비행사들. 왼쪽부터 버질 그리솜, 에드워드 화이트, 로저 차피. 출처=미국항공우주국(NASA)

◆희생을 기리다

 

해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은 아폴로 미션에 모든 것을 바친 우주비행사 3인의 희생을 기리는 행사를 연다. 올해는 아폴로 1호의 폭발사고가 발생한 지 50년이 된 해로, 미국 플로리다주 메리트섬의 케네디우주센터에는 그들을 기리는 새로운 전시물이 세워졌다. 사고 당시 우주선 해치와 그들의 업적 등이 전시됐다. 나사는 이 전시가 미래 세대에게 자극을 주는 우주 개척의 동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미국 플로리다주 메리트섬의 케네디우주센터에 전시된 ‘아폴로 1호’ 우주비행사의 영상. 출처=미국항공우주국(NASA)

◆희생 위에 꽃핀 아폴로 프로젝트

 

세계 표준시로 1969년 7월21일 오전 2시56분 역사상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한 ‘아폴로 11호’의 파일럿인 마이클 콜린스는 희생된 우주비행사들이 남긴 유산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될 일이었지만, 그들의 희생으로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들의 희생을 밑거름 삼아 이후의 달 탐험 계획은 속도를 늦추며 더욱 신중히 진행되었고, 결국 또 다른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의미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사람이 직접 달에 가는 일은 더욱 어려웠을 수 있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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