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우찬제의책읽기,세상읽기] 피로스의 승리와 카르페 디엠

관련이슈 우찬제의 冊읽기 세상읽기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17-06-19 23:34:21 수정 : 2017-06-19 23:34:2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행복한 삶을 끝내 누리지 못하고 전사 / 피로스 승리의 역설 잘 헤아린 ‘욜로족’
트로이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를 두고 호메로스는 ‘일리아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그는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고요히 살지를 않네. 모든 생각은 전쟁을 향해 있고 전쟁의 함성만 그리워하네.”

아킬레우스의 후손인 피로스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 에페이로스의 아이아키데스 왕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몰로시아의 반란으로 일리리아의 왕 글라우키아스의 보호를 받고 자라야 했던 이가 피로스였다. 볼모로 갔던 이집트에서 베레니케의 딸 안티고네와 결혼하게 되고, 처가의 도움을 받아 에페이로스의 왕이 됐다. 한때 마케도니아를 다스렸으며, 이탈리아와 시칠리아까지 원정했다. 알렉산드로스의 사촌이었던 피로스는 초기 로마가 가장 두려한 강자였다.

피로스는 로마와 전쟁을 하고 있던 타렌툼으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는다. 마침 전쟁 없이 한가롭게 지내던 피로스에게 로마는 썩 괜찮은 도전의 대상이었다. 그때 당대 뛰어난 웅변가인 키네아스와 피로스의 대화 장면을 플루타르코스는 그의 ‘영웅전’에서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내가 힘으로 빼앗은 것보다 키네아스가 혀로 얻은 땅이 더 많다”고 말했을 정도로 피로스는 키네아스를 신뢰했다. 그런 키네아스가 피로스에게 강한 로마와 싸워서 승리하게 되면 그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묻는다. 피로스는 당연히 이탈리아 전역을 정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다음은? 시칠리아가 부르고 있으니 그리로. 그다음은? 리비아와 카르타고. 그다음은? 마케도니아를 회복하고 그리스 전역을 지배.

과연 아킬레우스의 후손다운 전쟁 영웅의 생각처럼 들린다. 키네아스는 다시 묻는다. 그다음은? 그제야 피로스는 전쟁 생각을 멈춘다. “그때에는 쉬어야지. 날마다 마시고 놀며 즐거운 이야기로 세월을 보내야지.” 그러자 키네아스는 말한다. “전하, 편하게 쉬며 놀고 싶다면, 지금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럴 준비는 충분합니다. 그런데도 그걸 얻으시려고 남에게 고생을 시키고 자신도 고생하시니 마지막에 우리가 얻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을 받은 피로스는 현재의 즐거운 삶을 미뤄두고 무서운 전쟁을 계속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지에 대해 잠시 생각하지만, 그의 계획을 바꾸지 않는다.

그리하여 로마와 전쟁을 하게 되고 베네치아까지 원정한다. 이 전쟁에서 피로스는 승리하기는 하지만 피해도 많이 입었다. 희생과 비용을 많이 치른 승리를 일컫는 ‘피로스의 승리’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했다. ‘피로’한 승리였던 ‘피로스의 승리’의 저주였을까. 피로스는 결국 스파르타와의 싸움에서 전사하고 만다. 그로써 그다음, 그다음으로 미뤄두었던 즐겁고 행복한 삶을 그는 끝내 누리지 못했다.

요즘 피로스의 승리의 역설을 잘 헤아린 사람이 늘어난다. 이른바 ‘욜로족’들도 그런 경우 아닐까. 인생은 오로지 한 번뿐이니(You only live once!) 후회 없이 이 순간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이들이 20대에서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오늘을 행복하게 즐기면서, 그런 오늘을 지속가능하게 이어갈 수 있다면 그야말로 최선의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