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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영웅, 헌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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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20 22:01:10 수정 : 2017-06-20 2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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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률 5.6%… 일본·프랑스보다 높아
10∼20대 치중… 방학·명절 때 부족
30대 이상 어른들 관심과 참여 절실
우리나라에서 무상헌혈이 시작된 것은 1960년 4·19 혁명 때였다. 부상 학생의 치료를 위한 시민과 학생들의 자발적 헌혈운동이 계기였다. 1960년부터 3년간 무상 헌혈자수는 239명에 이른다. 한 해 평균 80명이 무상헌혈을 한 셈이다. 55년여가 지난 2016년, 우리나라의 헌혈자 수는 총 286만6000명이다. 같은 해 기준 국민 헌혈율은 5.6%로 일본(4.0%), 프랑스(4.6%, 이상 2015년 기준), 호주(5.4%, 2014년 기준)보다 높다.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피를 이웃들과 나누는 헌혈자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다.

지난 14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헌혈자의 날이었다. ‘생명을 살리는 힘, 지금 당신의 헌혈입니다’를 주제로 세종문화회관에서 헌혈자 250여명을 모시고 기념식이 진행됐다. 이날을 기념해 헌혈자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표창을 준비하면서, 헌혈자 한 분의 사연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
43세 여성인 김현진씨가 헌혈을 한 횟수가 무려 231회라고 했다. 중환자실에서 수혈을 받았던 아버지를 기억하며 헌혈을 시작한 31세부터 13년간 평균 한 달에 1.5회 정도로 자신의 피를 나누어 준 셈이다. 한 번의 헌혈이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린다고 단순히 계산하더라도 그는 231명의 생명을 살린 셈이다. 더구나 김씨는 헌혈하는 데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혈소판 헌혈(1회 90분)을 202회나 했다. 혈소판이 백혈병 환아들에게 특히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백혈병 환우들을 위한 조혈모세포기증희망 등록도 했다.

그의 사연을 보고 얼마 전 백혈병 환우회 소식지를 통해 본 희선씨의 사연이 떠올랐다. 항암치료와 골수이식을 이겨내고 현재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희선씨. 그는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하면서 매일 1팩(혈소판 250mL)에서 32팩까지 수혈을 받았다. 그가 이 어려운 치료를 이겨낼 수 있었던 저력은 ‘구세군 냄비를 보아도 내 피 같은 돈을 선뜻 꺼내기 어려운데, 얼굴도 모르는 나에게 그 많은 사람들이 진짜 뜨거운 피를 나눠 주었구나’하는 감사의 마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나 고마운 헌혈자들과 높은 헌혈률을 보유한 우리나라에서 왜 심심찮게 ‘혈액부족’이라는 기사가 나오는 걸까. 그 이유는 특정 연령대에만 헌혈을 의존하는 구조에 있다. 헌혈자의 대다수(73%)가 10~20대이기 때문에 이들이 헌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겨울방학이나 명절 연휴, 시험기간 등에 혈액이 일시적으로 부족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인구의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암, 심장질환, 근골격계 질환 등 수혈을 받아야 할 환자 수는 늘고 있다. 혈액의 총 사용량 역시 증가하는 추세다. 이대로 중장년층의 헌혈(27%)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10~20대 헌혈이 10%만 감소해도 5년 내 혈액부족 사태가 올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헌혈자들에 대한 감사함과 긍정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는 제2, 제3의 희선씨를 다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는 혈액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혈액 분야 전문가, 환우회, 관계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며 ‘혈액사업 중장기 발전계획(2018∼2022년)’을 준비하고 있다. 헌혈자들이 더욱 대우받고, 쾌적한 환경에서 헌혈할 수 있도록 고민도 하고 있다. 국민들이 헌혈해 준 혈액을 꼭 필요한 곳에, 적정량을 쓰고 있는지 감시도 열심히 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헌혈에는 소극적이면서 수혈량의 73%를 사용하는 30대 이상 어른들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

헌혈자들이 주삿바늘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헌혈을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아파보지도 않은 헌혈자들이 어찌 생사의 기로에서 가슴 찢는 이웃의 아픔을 이토록 헤아릴 수 있는 걸까. 헌혈이 주는 생명 나눔과 나눔 후의 기쁨. 이것이야말로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시대에 삶과 죽음을 오가는 절박한 이웃에게 삶이라는 희망을 선물할 수 있는 최고의 기부가 아닐까.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숨은 히어로, 헌혈자들. 이제 우리 모두가 그 주인공이 돼 보는 것은 어떨까.

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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