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화폐 없는 사회가 올까?

차세대 금융기술로 ‘블록체인’ 주목 / 신뢰는 블록체인 성공에 결정적 영향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과 함께 차세대 금융기술로 ‘블록체인’(Block Chain)이 주목받고 있다. 블록체인은 은행의 서버를 통해 거래되는 것이 아니라 거래 당사자 간(P2P 네트워크) 가상의 공간에서 정보를 공유해 가상화폐로 주고받는 새로운 기술이다. 블록 간에 서로 얽혀있어 하나의 정보가 바뀌면 다른 블록도 영향을 받게 되기에 모든 컴퓨터를 해킹하지 않는 한 정보를 빼낼 수 없어 해킹과 데이터 변조가 어렵다. 파일공유 커뮤니티 같은 공간에 정보를 공유하고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사용자의 데이터를 사용자별로 분산 저장하기에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와 같은 공격으로부터도 안전하다. 삼성페이, 카카오페이 등 모바일 간편 결제 서비스나 비트코인 모두 블록체인의 큰 범주에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블록체인 거래 기록은 의무적으로 암호화되고, 그 소프트웨어를 실행하는 컴퓨터상에서 운영된다. 블록체인을 통해 방대한 금융 데이터베이스(DB)가 없어지는 효과가 있기에 미래의 금융으로 간주된다. 블록체인은 미래 현금이나 동전 없는 사회를 가시화하는 중간 단계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이 지난 30~40년을 지배한 것처럼 앞으로는 블록체인 혁명이 30년 이상 지배할 것이며, 화폐 없는 경제를 앞당길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미국도 최근 ‘기술과 혁신을 위한 정책 발의’에서 블록체인을 지정하며, 공공 영역을 시발점으로 블록체인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다. 스웨덴을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도 블록체인을 통해 현물 화폐 없는 사회를 앞당기고 있다.

신동희 중앙대 교수·인간컴퓨터상호작용학

그러나 지나친 장밋빛 전망은 금물이다. 블록체인 기술에 투자하는 기업이 늘면서 화폐 없는 사회가 이미 본격적으로 구현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 분산형 장부 기술은 주요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혁신하고 경제구조를 변혁시킬 잠재력이 있지만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도 갖고 있다. 블록체인이 해킹이나 위조 변조를 막기 위해 나온 신기술인데, 역설적으로 개인정보 누출이나 프라이버시 침해 등에 상당히 취약하다. 연결된 블록체인 때문에 오히려 정보가 노출되고, 조작될 위험도 있고, 여러 단말 장치에 데이터를 분산 저장하기에 프라이버시 문제가 커질 수 있다. 기본적으로 블록체인에서 오가는 대상이 실제 화폐가 아니라 단순 기호나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화폐가 아닌 기호나 텍스트가 거래되기에 그 기호를 믿고 거래할 당사자 간 신뢰가 필수적이다. 블록체인이 안정적으로 운용되기 위한 전제조건은 기술적 암호체계보다 구성원 간의 신뢰이다. 블록체인의 선두주자인 스웨덴을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공통점은 사회 전반에 투명성과 신뢰가 뿌리 깊다는 점이다. 블록체인은 실물화폐의 흐름 없이 구성원의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되고 신뢰를 만들어 주는 사회적 기술이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을 이끌 기술이 모두 네트워크 관련 기술이며, 네트워크상의 신뢰가 기반이 되지 않으면 활성화될 수 없다. 다른 모든 네트워크 기반 기술에 신뢰를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 기술이라는 점에서 블록체인은 매우 중요하다.

블록체인은 신뢰를 바탕으로 구현되는 사회기반 시스템이기에 기본적 신뢰가 부족한 사회에서는 개인의 보안이 침해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사기 사건이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 모든 정보가 들어 있으면 누군가 손쉽게 이 정보를 사용자에게 피해를 주는 방향으로 악용될 수 있다. 블록체인이 현재의 비트코인 수준을 넘어 헬스케어, 식품, 엔터테인먼트 등 전방위적 사회영역에 그 활용 영역이 넓어지려면 보다 체계적인 암호화 기술이 개발돼야 하고, 그 기술적 바탕 위에 신뢰기반의 사회·경제 정보생태계가 구현돼야 한다. 블록체인은 기술적 시스템과 사회적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는 사회기술적 앙상블이다. 신뢰는 사회적 간접자본으로서 블록체인의 성공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신동희 중앙대 교수·인간컴퓨터상호작용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