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볕더위는 이후 해마다 되풀이됐다. 새카맣게 타들어 간 것은 농심이다. 바닥을 드러낸 하천에 떼죽음한 물고기. 논밭에 댈 물이 있을 리 만무하다. 갈라진 논바닥에 농심은 가리가리 찢긴다.
조선 중종 35년, 1540년 음력 5월. 홍문관 직제학 구수담은 상소를 올렸다. “봄부터 비는 내리지 않고 폭염이 이어져 도랑과 샘도 말랐사옵니다. … 재해 없는 해가 없건만 지금은 더욱 심해 기근이 이어지옵니다.” 지금과 똑같다. 어찌 대처했을까. 이어지는 상소문, “춘추고이(春秋考異)에 ‘임금이 정도를 잃어 사치가 참람하면 난기(亂氣)가 하늘을 분노케 한다고 했사옵니다. … 비를 빌기 위해 하지 않은 일이 없지만 그 근본은 오로지 인사(人事)를 닦는 데 있사옵니다.” 장령 이준경은 조강(朝講) 때 이런 말을 했다. “궁실 토목 역사(役事)를 줄이고, 백성을 지치게 하는 일을 중단하옵소서.”
때 이른 폭염과 가뭄에 생소한 용어 하나가 등장했다. ‘열적 고기압’. 더운 공기덩어리를 이르는 말이다. 중국 북부∼몽골 일대 5.5㎞ 상공에 열적 고기압이 만들어져 남쪽에서 올라와야 할 태평양 고기압과 장마전선을 막고 있다고 한다. 섭씨 50도를 오르내리는 미국 남서부의 폭염. 그 이치도 비슷하다.
과학의 개가일까. 과학기술은 아직 반쪽이다. 왜? 원인을 알면 해결 방도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도 하늘만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조선시대와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하늘을 경외하는 마음이라도 있다면 인사라도 닦아 보련만….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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