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제훈이 이런 걱정을 했던 이유는 그가 연기한 박열이 별 볼일 없는 독립운동가여서가 아니다. 박열의 삶 자체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기 때문에 조금도 더할 것 없이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이준익 감독의 주문이기도 했다. 영화는 당시 일본과 조선 신문, 박열의 신념적 동지이자 연인이었던 가네코 후미코가 남긴 책 등 기록과 최대한 가깝게 제작됐다.
28일 개봉하는 영화 ‘박열’에서 박열을 연기한 이제훈을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박열은 3·1운동 이후 도쿄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다 붙잡힌 뒤 법정에서 당당하게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했던 인물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셋이었다.
영화 ‘박열’에서 거칠고 익살스러운 독립운동가 박열을 연기한 배우 이제훈은 “배우로서 늘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이번에 제대로 변신한 것 같아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
‘박열’은 독립운동을 다룬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 밝은 분위기를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가볍지 않다. 뜨겁게 투쟁하면서도 해학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 박열 덕이다. 그는 자신을 신문하는 예비판사(검사)에게 반말로 응대한다. 감옥에서는 밥이 적다며 조선식으로 고봉밥을 달라고 단식투쟁을 벌이고, 일본 법관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재판을 받겠다며 조선 관복을 입는다. 영화의 웃음 포인트인 이 장면들은 일제에 굽히지 않으려는 박열의 의지를 익살스럽게 드러낸다.
“박열은 그토록 원하던 사형을 받지 못했고 연인의 죽음으로 삶의 이유를 일부 상실했지만 끝까지 살아남아요. 일제의 만행을 밝히겠다는 일념으로요. 그렇게 견딘 시간이 22년2개월이에요. 출소한 뒤엔 혼란스런 나라의 건국을 이루는 데 일조하고, 김구 선생의 부탁으로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 유해를 모셔오기도 해요. 결과보다 이런 과정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문제에 개인이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고, 또 행동하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니까요.”
이제훈은 이번 영화 대사의 절반가량을 일본어로 소화했다. 일본어를 배우면 좋았겠지만 준비시간이 너무도 부족했다. 그는 무작정, 하지만 똑똑하게 외우는 방법을 택했다. “저는 ‘아리가또 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밖에 할 줄 몰랐어요. 그래서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하는 배우들에게 제 대사를 읽어 달라고 부탁했죠. 하나의 가이드라인만 있으면 따라하게 될 수 있으니까 여러 사람에게요. 문장과 문단, 단어를 꼼꼼하게, 그리고 대사 읊는 속도를 아주 빠르게, 중간, 아주 느리게 이렇게 녹음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걸 촬영 내내 귀에 끼고 살았죠. 보통 작품을 끝내고 나면 대사가 머릿속에서 흐려지기 마련인데 박열의 일본어 대사는 지금도 정확히 읊을 수 있어요.”
이런 노력에 함께 촬영한 배우들도 혀를 내둘렀다. 이제훈은 관객들이 어색하다고 느끼는 건 “정말 못 견디겠다”고 말한다.
박열은 첫 등장부터 영화의 마지막까지 ‘거지같은’(후미코 대사) 몰골이다. 말끔하고 순수했던 이제훈의 기존 이미지와는 정반대다. “만족스러워요. 아직은 저를 던져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거든요.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배우로서 신뢰를 주는 성장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잘하는 연기, 안정적인 선택을 하는 게 달갑지 않아요. 보는 사람들이 새롭게 느낄 수 있는 거라면 다 해보고 싶어요.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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