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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의 일요세상] 과연 여기가 처음부터 흙길이었을까?

입력 : 2017-06-25 08:00:00 수정 : 2017-06-24 10:5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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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이나 동물 또는 자동차 따위가 지나갈 수 있게 땅 위에 낸 일정한 너비의 공간이다.

형태에 따라 산과 들에 난 오솔길과 들길, 강변의 자갈길과 비행기나 배가 다니는 하늘길과 뱃길 등으로 종류가 세분화하기는 했지만, 중요한 건 길을 만드는 주체가 공식적으로 정해졌다는 사실이다.

지난 23일, 서울의 한 대형 공원. 운동장과 분수대 등을 갖춘 이곳은 일일 이용객이 만명 단위에 달할 만큼 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 공간이다. 뜨거운 햇볕에도 모자를 쓰고 운동장을 걷는 사람들이 보였으며, 소풍 나온 아이들도 많았다.

 

서울의 한 대형 공원 잔디밭 사이에 난 흙길. 시작점은 하수도 덮개와 돌, 끝점은 벽돌 턱으로 마무리됐다. 정식으로 닦아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원 이용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길을 지나다녔다.


하수도 덮개를 따라 잔디밭 사이를 성큼성큼 지나가는 한 남성이 공원 출입문 근처에서 발견됐다.

아무리 살펴봐도 그가 발을 내디딘 곳은 정식으로 닦인 길이 아니었다. 덮개 근처에는 잔디와 돌 등이 놓여 있었는데, 놀랍게도 몇 발짝 떨어진 곳에는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폭으로 흙길이 생성되어 있었다. 오랜 세월 사람들이 잔디를 넘나들면서 흙길로 변했을 가능성이 컸다.

출입문으로 들어와 한참 걷다가 왼쪽으로 꺾어야 남성이 지나간 곳에 닿았다.

흙길이 끝난 곳도 벽돌 턱으로 마무리되어 있었다. 시작점과 끝점을 거듭 살펴봐도 정식으로 닦아낸 길은 분명히 아니었다.

“글쎄, 사람들이 다니니까 길인가 보다 했지.”

인접한 곳에서 노인들의 장기판을 구경하던 한 중년 남성은 이같이 말했다.

‘빨리빨리’ 습성이 공원 이용객 사이에서도 만연해 우회로를 내버려 두고, 잔디밭을 가로지르면서 처음에 잔디였던 곳이 흙길로 변한 셈이다. 잔디밭을 밟고 지나가 생겨버린 흙길은 이곳에서만 관찰되는 현상은 아니었다.

 
경기도의 한 지하철역 앞 쉼터. 바로 맞은편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무단횡단하는 시민들이 쉼터를 가로지르는 바람에 생긴 흙길로 추정된다.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제56조에 따르면 공원에서 애완동물의 배설물 문제나 소음을 일으킨 사람 등에게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릴 수 있다. 하지만 잔디밭을 훼손하고 가로지르는 행위에 대해서는 딱히 처벌 근거도 없고, 잔디를 밟고 지나갔다고 해서 과태료를 냈다는 사람도 거의 없다.

지난 5월, ‘잔디밭 휴식년제’ 중이라는 현수막을 무시하고 근처에 텐트를 친 이용객들과 관련해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질문했을 때도 “공원 내 텐트 설치는 ‘공공장소 점유’에 해당하므로 불법이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텐트 수요가 늘어나고 이용객들을 통제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사실상 계도가 불가능해졌다”는 답변을 받은 바 있다.

당시 대공원 관계자는 “아이를 재우려고 텐트를 설치하는 부모님들이 많아 일일이 이야기할 수 없는 노릇”이라며 “텐트 수요가 많아 부분적으로 허용하지만, 솔직히 텐트 설치를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누군가 물었다. 잔디밭 출입금지보다 제대로 관리를 해서 이용과 관리가 조화롭게 이뤄져야 하는 게 우선 아니냐고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전에 조금만 우회하면 닿을 수 있는 곳을 가기 위해 불필요하게 잔디를 훼손, 흙길을 만들어버린 이들의 의식을 한 번쯤 돌아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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