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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 살 여자 주느비에브가 어느날 낯선 공증인의 방문을 받는다. 이 공증인은 장 데망스라는 남자가 그녀를 유일한 상속자로 지목하고 죽었다고 말한다. 주느비에브는 아무리 기억을 뒤져보아도 장이라는 남자를 만난 적이 없다. 문제는 상속을 허락하면 그 남자의 재산뿐 아니라 빚까지도 상속받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친구에게 남의 일인 것처럼 딴청을 피우며 자문을 구해본다. 그 남자는 그 여자의 애인이 아니라고 강조했건만 친구는 “오, 주느비에브, 얼간이처럼 굴지 마! 애인도 아닌데 상속자로 지정했겠어? 그럴 리가 없잖아”라고 혀를 찬다.

그녀는 결국 상속을 받아들였고 선택은 대박이었다. 빚은커녕 생전에 보석상을 했던 남자의 재산은 엄청났다. 놀란 자식들을 설득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자식들도 그 남자가 엄마의 숨겨둔 애인이었을 거라고 확신에 찬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주느비에브는 하릴없이 자식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맞다고, 그 남자는 자신의 ‘잃어버린 사랑’이었다고. 프랑스 작가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의 단편소설 ‘브뤼셀의 두 남자’에 대해 말하는 중이다.

이 소동 뒤에는 장과 로랑이라는 두 남자의 사연이 있다. 두 남자는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세상에 떳떳하게 밝힐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55년 전 주느비에브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릴 때 조각상 뒤에 숨어서 둘만의 의식을 치렀다. 사제가 결혼식을 진행하면서 신랑 신부에게 질문을 하면 두 남자도 자신들이 받은 질문처럼 대답을 하는 식으로. 이들은 주느비에브 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남편 에디가 바람을 피울 때도, 그가 뇌출혈로 장애인이 될 때도, 그녀가 스페인 남자의 사생아 다비드를 낳을 때도 모두 지켜보았다.

두 남자는 여전히 서로 사랑했지만 아이가 없는 사실에 대해 절망한다. 이들은 총명하고 아름다운 다비드를 자신들의 자식으로 여기기로 하고, 숨어서 갖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두 남자는 아이의 성장을 뿌듯하게 지켜보며 행복했는데, 다비드가 18살에 오토바이 사고로 죽고 만다. 로랑이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죽자 장도 뒤를 이으면서 아이의 어머니에게 재산을 선물하고 간 것이다. 이승에서 유령 부부였던 두 남자가 죽으면서 세속에 사랑의 알리바이를 만들어놓고 간 셈이다. 로랑이 장에게 목청을 높였던 대사, 이른바 ‘성다수자’들이 곱씹어볼 만하다. “당신은 사랑 없이도 아랫도리 한 번 놀려서 번식하는 이성애자들을 질투하고 있잖아요!”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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