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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몰린 마오 카드 ‘문혁’… 정적 제거 등 피의 숙청으로 수천만 인민들 삶도 파괴

입력 : 2017-06-24 03:00:00 수정 : 2017-06-23 21:2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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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디쾨터 지음/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만5000원
문화 대혁명/프랑크 디쾨터 지음/고기탁 옮김/열린책들/2만5000원


네덜란드인 역사학자로 중국정치 전문가인 프랭크 디쾨터의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1962년부터 1976년까지 중국에 혼란과 공포를 불러왔던 문화혁명을 재구성했다. 소련의 스탈린 사후 권력을 잡은 니키타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비판하자, 마오 자신도 스탈린처럼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1962년 류사오치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대약진 운동으로 발생한 기근을 ‘인재’로 규정했다. 위협을 느낀 마오는 자신의 위상 회복을 위해 정적 제거를 궁리한다. 저자는 문혁의 출발을 이렇게 파악하면서, 정적 제거와 함께 문혁은 사회주의 혁명과정의 필수적인 코스라고 설명했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갈 때 혁명이 필요했다면,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할 때도 혁명이 필요했고 마오는 이를 ‘문혁’으로 돌파하려 했다는 것.

그러나 결과적으로 문혁은 애초 마오의 목적과는 다르게 전개됐다. 마오는 장칭을 비롯한 4인방을 통해 학생들을 부추겨 학교에서 교사와 관리자들을 공격하도록 선동했다. 홍위병이란 완장을 찬 학생들은 일반시민은 물론, 원로 당 지도자들도 공격했다.

저자는 “(문혁은) 부르주아의 잔재와 싸우는 대신 계획경제를 뒤엎고 공산당 이념을 도려냈다”면서 “요컨대 마오쩌둥주의를 묻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권력 다툼과 정치적 이해로 빚어진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희생자는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저자는 문화적 유린, 비난과 허위자백, 정적 제거 등으로 어떻게 수천만 인민들이 파괴됐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앞서 1945년부터 1957년까지 국공내전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다룬 ‘해방의 비극’과, 1958∼1962년 ‘대약진 운동’의 실상을 쓴 ‘마오의 대기근’을 출간한 바 있다. 그러나 저자는 서구 학자 입장에서만 기술한 한계를 보인다. 문혁이 마오의 정적 제거 내지, 권력 투쟁의 결과라는 점이 그렇다. 중국에서의 문혁은 갖가지 문제를 초래했지만, 정치·사회적으로 끼친 영향도 적지 않았다.

정승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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