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편완식이 만난 사람] “조선 목가구를 보면 타향에서 고향집에 돌아온 듯 해요”

관련이슈 편완식이 만난 사람

입력 : 2017-06-26 20:54:32 수정 : 2017-06-26 20:54:3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고가구 전문가 정대영씨 조선 목가구를 가까이 두고 바라보고 있노라면 편안한 마음이 든다. 멀리 타지로 떠났다가 고향집에 돌아온 느낌이랄까. 나무라는 자연 재료와 용도의 충실함이 만나서 이뤄낸 미감이다. 장인은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치장보다는 용도에 집중했다. 때론 취향도 고려했지만 재료의 특성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재료와 용도의 최적합 접점이 이뤄낸 결과가 심플함이다. 오랜 세월 곁에 두고 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손때가 묻을수록 정감이 간다. 외장의 면 분할도 여닫이문을 중심으로 단순하게 처리했다. 전통보자기 면 분할을 보는 듯하다. 현대추상미술의 거장 피에트 몬드리안(네델란드 출신 추상화가)의 작품이 떠올려지기도 한다. 검정색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구획을 나눈 단순한 구성에 빨강·노랑·파랑 삼원색만을 사용한 회화 작품이다. 수직은 남성성으로, 수평은 여성성으로 보고 수직선을 나무에서, 수평선을 바다의 수평선에서 찾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단순화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수직은 생기를 불어넣고 수평은 평온함으로 다가온다. 삶의 순정을 천착한 조선 선비가 추구한 정신도 그러한 것이었다. 최근 한국미술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단색화 정신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조선 목가구는 심플함을 가장 잘 형상화한 작품이라 하겠다. 고가구 전문가 정대영(68)씨가 50년 가까이 조선 목가구에 빠져 사는 이유다.

“조선 목가구는 조선백자에 비유할 수 있다. 원래 백자의 흰색은 본성이 차갑고 가볍게 마련이지만 조선백자는 오히려 차갑지 않고 따듯하고, 은은한 느낌이라 가볍지 않다. 조선백자 예찬이 괜한 것이 아니다. 백자를 더 하얗고 밝게 했다고 훌륭한 것이 아니다. 차갑지도 가볍지도 않아 사람에게 정감을 줄 수 있는 것이 조선백자다. 실리를 지키면서도 강약의 맛과 절제미를 구현한 것은 마술과도 같은 일이다. 조선 목가구에서도 빼닫이(서랍)를 활용해 여백의 공간을 알뜰하게 사용하면서도 과하지 않게 한 것은 실리와 절제미, 강약의 조화로 꾀한 것이다.”


조선 목가구의 심플함이 현대미술관 현대디자인의 키워드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말하는 정대영씨. 그는 “조선백자 달항아리와 조선 목가구의 매치는 현대적 생활공간에 여백의 숨구멍으로 안성맞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스티브 잡스의 애플 아이폰 디자인 정신도 이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말한다. 조선 목가구의 미감이 현대미술, 현대디자인의 기본 정신과도 상통한다는 것이다.

“실리와 절제미는 현대디자인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재료와 용도의 최소공약수에서 인간의 정감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예전의 주문자생산 방식에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생산자 중심의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이런 구조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정보기술시대에 접어들어 다시 심플함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조선 목가구도 같은 방식으로 변질된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치장이 가해지면서 본질이 흐려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궁중에서 사용되는 가구에만 간결한 주칠선이 이용됐다. 일제는 왕실의 권위를 무너뜨리려고 온통 주칠이 된 목가구를 암암리에 권장했다. 화려함에 취하게 만든 것이다. 조선 목가구의 전형적인 왜곡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는 조선 목가구의 근본을 책장으로 보고 있다. 조선 선비의 취향과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 조선 목가구라는 것이다.


주칠선이 단아한 조선 궁중 책장 옆에 선 정대영씨.
“예전엔 주문자생산 방식이란 것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가구를 주문할 수 있는 양반 계층의 선비들이 기호에 맞게 제작을 요구했다. 물론 유교적 정신세계에 충실했을 것이다. 학문을 닦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책과 책장이었다. 책장의 기본틀이 옷장과 찬장으로 변모됐다. 투박한 모양새의 찬장의 경우 소목장이 아닌 대목장이 만들기도 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책장이 하나 있었다. 영조 때로 추정되는 것으로 소서(巢書·책의 둥지)라는 명칭의 각이 붙여진 특별한 기물이다. “특별하게도 각을 해 붙였다. 지금은 일본으로 흘러 들어갔지만 아쉽다. 영혼을 뺏기는 기분이 들어 각을 해 붙인 팻말은 떼어 지금도 내가 보관하고 있다.”

그는 조선 목가구의 또 하나의 축은 궤라고 말한다. 육면체 상자지만 용도의 포괄성과 더불어 단순미의 극치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싸서 옮길 수 있는 보자기 문화의 ‘나무버전’이라는 얘기다.

“흔히 외국인들은 처음 대하는 한국인들에 대해 무뚝뚝하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많은 것을 일일이 나열하지 않을 뿐이지 실제로 마음은 그렇지 않다. 말보다는 진심 어린 마음을 중요시하기에 그저 묵묵히 있을 따름이다. 궤가 우리에게 환기해 주는 정서 역시 이와 매우 흡사하다. 단조로우면서 무표정하다. 가식 없는 심플함이다.” 그는 화려함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궤라고 말한다. 평범하면서도 보편적인 기능을 가진 묵직한 느낌이 좋다고 했다. 군더더기가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궤에도 자물쇠를 중심으로 최소한의 장식이 있다. 단조로움 속의 강약이라 하겠다.”

그는 조선 목가구 관련 책도 여러 권 펴냈다. 조선의 궤, 한국의 장, 조선시대의 못, 조선의 나전, 조선가구 형태와 구성(실측자료집)이 대표적이다. 서울 답십리 고미술상가에 자리한 그의 사무실 동인방에 들렀을 때 그는 여러 조선 가구들의 자료들을 꼼꼼히 챙기고 있었다. 또 다른 책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고시 공부를 하다 포기하고 고가구 세계에 빠져들었다. 들여다보고 스케치를 수없이 하면서 하나씩 터득해 갔다. 책도 그런 결과물이다.”

그는 일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으로 돌아가는 꿈까지 꾸게 된다. “소목장은 물론 고가구 관계자들과 수없이 대화를 해도 풀리지 않는 것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꿈에서 조선으로 들어가게 된다. 영의 세계를 더듬어 가구의 타당성을 찾아나갈 때가 많다. 일종의 영감의 세계다.”

그는 중국 단둥에서 북한 고가구를 탐문하다 스파이로 몰릴 뻔하기도 했다. 스스로 고가구 장사꾼이라 말하지만 진정한 학자의 면모를 그에게서 본다. 이젠 세상 어떤 평가보다 그 자신이 한평생 어떤 것에 바쳤고, 가장 편한 자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에 만족할 따름이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