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양반가의 뜰에서 능소화를 많이 볼 수 있었던 건 사실인데, 그건 말이야, 사람의 출입이 제한되거나 비교적 보호가 잘되는 양반이나 부자 집 근처에서 아무런 간섭 없이 잘 자랄 수 있었기 때문일 거야. 양반네들 집이야 비교적 오래 그 터와 형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지만 평민네들 허름한 집이야 무너지기 쉽거나 이사 다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서식처 관리가 부실할 것은 뻔한 일이지.
내 고향 마을 능소화에 대해 언젠가 그대에게 얘기를 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더위에 지치고 지쳐갈 무렵, 늦여름에서야 주황색 은은한 꽃을 피워내는 그 능소화. 치렁치렁 줄기에 매달린 채 하늘을 항해 나팔이라도 불 것처럼 품격 넘치는 자태로 피어나던 능소화는 내게 누님 같은 이미지로 깊이 박혀 있어. 고향 집 담벼락을 유난히 화려하게 타고 오르던 꽃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그 꽃이 능소화라는 이름인지도 몰랐고, 후일 도시로 나와 성장하면서 식물도감에서 확인한 것이었다. 남쪽 지방을 여행하면서 우연히 능소화를 차창 밖으로 발견하면 항상 그곳이 고향 같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누님은 어린 나보다 열 살이나 위였어. 어머니보다 더 살뜰한 존재였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늘 부재중이었어. 행상을 다니던 쭈글쭈글한 어머니는 며칠 만에 집에 오면 모래 더미처럼 무너져 안방에서 잠만 자던 기억이 난다. 뽀얀 누님에게선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향기가 났어. 어린 누님이 화장을 한 것도 아니었을 터이니 그 향은 또래의 처녀에게서 나는 아찔한 살 냄새 아니었을까. 능소화가 하늘을 능멸하는 꽃이라는 거 아는가. 업신여길 ‘능’(凌)에다 하늘 ‘소’(?)를 쓰는 꽃이니 하늘을 조롱하는, 천륜에 도전하는 위험한 꽃인 셈이지. 이 꽃도 질 때는 송이째 몸을 던진다더라. 천륜도 때론 서럽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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