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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순열의경제수첩] 가계부채, ‘결정적 한 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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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02 23:53:24 수정 : 2017-07-02 23:5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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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뇌관 가계부채, 총량 아닌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율 문제 / 당뇨병같이 위험관리가 관건 / 총액 중 ‘악성’ 파악이 당국 할 일 가계부채를 두고 한국경제 뇌관이라고 한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말이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칼이 줄에 매달려 머리를 정조준하고 있는 상황”에 비유했다. 금융정책과 감독업무를 총괄했던 장관급 출신 인사의 진단이 과장이나 엄살은 아닐 것이다. 경고음은 오래전 울렸다. 그가 가계부채 걱정에 “밤잠을 이룰 수 없다”고 한 건 6년 전, 금융위원장 재임시절이다.

오랜 경고음의 효과로, ‘가계부채 = 한국경제 뇌관’ 등식은 단단하게 굳어졌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공식의 내용을 제대로 아는 이는 별로 없는 듯하다. 가계부채가 왜 뇌관인 것인지, 뇌관이라면 그 크기는 얼마나 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마치 수학공식을 외우기만 할 뿐 왜 그런 공식이 나오게 됐는지 모르는 것처럼.

정부가 가계부채 종합대책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는 요즘도 가계부채가 왜 위험한지는 사실 막연하다. 흔히 그 위험성을 얘기할 때 총량을 지목한다. ‘가계부채, 또 사상 최대’ 식의 기사 제목은 폭발이 임박한 버블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엄밀히 볼 때 총량이 문제는 아니다. 모든 가계부채가 위험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갚을 능력이 있는 가계의 부채는 뇌관이 아니다.

류순열 경제부 선임기자
총량만 주시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가계부채 총량은 통계 산출 기준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가계부채 통계는 두 가지다. 우선 일반가계 부채 총량인 ‘가계신용’으로, 3월 말 기준 1360조원이다. 여기엔 사실상 가계부채인 소규모 자영업자의 부채가 빠지는 맹점이 있다. 이를 포함한 광의의 가계부채 통계인 ‘가계 및 비영리단체’부채는 3월 말 기준 1587조원이다. 국가 간 비교가 가능한 가계부채 통계는 후자다.

내수 침체로 위험성이 커진 자영업자 부채도 작년 말 기준 적게는 520조원, 많게는 650조원에 달한다. 편차가 크다. 사업자등록번호로 대출(사업자대출)받지 않고 주민등록번호로 대출(가계대출)받은 자영업자의 부채가 포함됐는지, 원화만이 아니라 외화 대출도 포함됐는지 여부에 따라, 또 마이너스통장(한도대출)도 대출잔액 기준인지, 한도 전체를 잡은 것인지에 따라 부채 총량은 달라진다.

이렇듯 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는 통계를 놓고 어느 게 맞네, 틀리네 하며 절대 수치에 집착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정책 당국자들도 숫자에 얽매여 불필요한 소모전에 정책 역량을 낭비할 수 있다. 가계부채를 바라보는 여론을 의식해 이미 그들은 총량 통계에 민감하다.

위험성을 가늠하자면 총량이 아니라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을 봐야 한다. 그러나 이 지표도 절대 척도일 수는 없다. 박근혜정부에서 가계부채가 폭증하면서 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치솟긴 했다. 작년 말 기준 178.9%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높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한국보다 높은 나라들이 적잖다. 2015년 말 기준으로 덴마크가 292%, 네덜란드가 277%에 달하는 등 적잖은 선진국 가계부채 비율은 훨씬 높다. 그렇다고 그들의 가계부채가 한국보다 위험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별 문제가 안 된다. 최근 방한한 크리스토프 안드레 OECD 이코노미스트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북유럽 국가들은 사회보장제도가 잘 돼 있어 가계가 똑같은 양의 빚을 진다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금을 많이 내고 많은 복지 혜택을 누리는 유럽 선진국 가계의 부채와 한국의 사정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난센스다.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의 근심거리인 것은 틀림없다. 일본식 장기불황을 따라가는 흐름의 중심에 가계부채가 있다. ‘빚으로 지은 집’(House of Debt) 저자인 아티프 미안 프린스턴대 교수는 “일본은 버블 후 성장이 느려졌다”며 “한국은 일본 케이스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결정적 한 방’이 있는 것은 아니다. 8월 정부가 발표할 가계부채 종합대책에도 그런 건 없을 것이다. 작금 가계부채는 당뇨병과 같다. 위험 관리가 핵심이다. 차주의 사정이 제각각인 부채 총액 중 어느 만큼이 더 위험한 것인지, 그 위험액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이 당국이 해야 할 일이다. 가계부채는 총량의 문제가 아니다.

류순열 경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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