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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문화재] 춘향전의 최고 수혜자 남원 ‘광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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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12 21:27:53 수정 : 2017-07-12 21: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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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춘향전’이 있다. 조선 후기 작자미상의 판소리와 소설로 전래되는 춘향전은 현재도 대중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소설은 춘향이를 구하는 극적 반전이 재미를 더하지만, 광한루를 비롯해 오작교 그네 등 소설 속 무대가 되었던 곳들도 인기를 끄는 데 큰 몫을 했다.

역사적으로 황희 정승(1363~1452)이 남원으로 유배를 떠나면서 건립된 광통루(廣通樓)가 광한루원(廣寒樓苑)의 전신에 해당한다. 이후 호수를 파고 삼신산과 오작교를 조성하면서 정원의 규모를 갖추게 됐다. 오늘날 ‘광한루원’(사진)은 명승 제33호로 지정되어 있다. 소설에 묘사되는 광한루의 모습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2014년 국립문화재연구소 명승팀은 광한루원 주변의 경관 변화과정과 그 요인을 시대별 지적도를 통해 추적한 바 있다. ‘광한루원’이 지금의 영역을 가지게 된 것은 1930년대 주거밀집지역에 둘러싸여 퇴락했던 ‘광한루’를 재건하기 위한 사회적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광한루를 그저 춘향전 이야기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곳이 아닌 춘향전의 장소성을 가진 중요한 공간으로 인식하였다.

당시 광한루 공사자금을 마련하는 데는 남원 유지들의 기부 외에도 최봉선을 위시한 기생들이 모금한 성금 2000원을 선뜻 내놓는 일도 있었다. 이후로 광한루 지역은 누각 인근의 민가와 시장, 학교부지 등을 지속적으로 편입시키면서 조선시대 역사경관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건물이 보수되고 정원공간도 옛 모습을 찾게 되었다.

우리가 오늘날 마주하는 문화재들은 오랜 세월을 겪으면서 그때마다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가치기준에 따라 남겨지거나 사라지는 운명을 맞게 된다. 조선시대 역사적 건물인 ‘광한루’가 오히려 이를 통해 파생된 ‘춘향전’이라는 대중적 인기현상에 힘입어 주변경관까지 올곧이 보존하게 된 역사적 사실은, 문화재를 지키는 힘은 곧 “유산의 가치인식에 대한 저변 확대”라는 것에 출발점이 있음을 일깨워 준다.

이원호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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