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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운전사는 가출한 18세 여자 ‘스타’에게 “꿈이 있느냐”고 물었다. 미국 전역을 떠돌며 잡지를 파는 청년 그룹의 일원인 그녀는 그런 질문은 처음 들었다고 답한다. 꿈 같은 건 생각도 못하고 살아가는 일상이기에 낯선 질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 ‘제이크’에게 같은 질문을 돌려준다. 혹시 꿈이 있느냐고. 남자애는 여자와 달리 평소에 머릿속에 담아두던 꿈을 서슴없이 말한다. 숲속의 집을 사는 것이라고. 미국 흙수저 청년들의 밑바닥을 다룬 영화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에 대해 말하는 중이다.

‘스타’라는 이름은 엄마가 “우리는 모두 죽음의 별에서 태어난다”는 의미로 붙여준 이름이다.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이 죽음의 별이라는 자학적인 말. 엄마는 마약 중독으로 죽었고 아버지는 그녀를 틈만 나면 성폭행한다. 그녀는 어린 두 의붓동생까지 건사해야 하는 처지. 쓰레기더미를 뒤져 유통기한이 남은 식료품을 챙겨 냉장고에 보관하는 게 일이었다. 전국을 떠돌며 잡지를 파는 그룹의 남자 제이크가 그녀를 스카우트한 것이다.

이들은 미국의 부촌과 빈촌, 농장과 유전지대 등을 떠돌며 앵벌이 수준에서 조금 벗어난 노동을 한다. 아메리카의 밑바닥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로드무비다. 여성감독 안드레아 아놀드는 밑바닥 청춘의 좌충우돌과 아픔을 섬세하고 치밀하게 담아낸 이 영화로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도 받았다. 레이디 앤터벨룸의 노래 ‘아메리칸 허니’에서 빌려온 타이틀인데, 이 노래는 “정신없는 인생의 경주에 붙들려 /부질없이 애를 쓰면 미쳐버릴지도 몰라 /난 돌아가고 싶을 뿐이야 /아메리칸 허니에게”로 흘러가는 컨트리뮤직이다. 아메리칸 허니란 미국 남부 출신 여성을 이르는 말로, 순수한 시절을 보낸 시골 출신 사랑스러운 존재를 의미한다.

누구에게나 꿈은 있다. 다만 그 꿈을 의식조차 못하고 사는 각박한 현실이 있을 뿐이다. 영화 말미에 ‘스타’는 새끼 거북이를 호수로 방생하며 자신도 물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수영을 하지 못하는 그녀가 끝내 꿈을 접으려는 것 같아 지레 암울하지만, 162분에 이르는 긴 러닝타임을 견딘 관객들의 기대를 무시하진 않는다. 그녀는 밤하늘에 빛나는 반딧불이들과 함께 호수에서 불쑥 상체를 솟구친다. 끝내 포기할 수 없는 사랑과 희망을 위해. 생에 대한 미련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모든 청춘에게 보내는 따스한 격려로 다가온다. 꿈이 있어야 절망도 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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