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브레이스는 1960년대 케네디 행정부의 주인도 미국대사로 재직했는데, 당시의 경험과 소회에 대한 방대한 기록을 ‘대사 일지’라는 제목의 회고록으로 남겼다.
1950년대 말 갤브레이스는 아내와 함께 인도를 여행하면서 인도 사회의 저개발과 빈곤 문제를 직접 보고 큰 관심을 갖게 된다. 이후 케네디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던 갤브레이스는 다른 고위직 제안을 고사하고 주인도 대사가 됐다고 한다.
갤브레이스는 대사 부임 후에 네루 인도 총리를 거의 매주 만나 당시 국가재건 작업에 한창이던 인도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조언을 했다. 또한 베트남전 등 미국의 주요 외교현안에 대해 케네디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으며, 이러한 서한들이 대사일지에 수록돼 있다.
조현 외교부 제2차관 |
필자는 뉴델리에서 미국 대사와도 종종 이 책을 화제 삼아 대화를 나눴다. 우리는 갤브레이스가 인도에 근무하던 당시에는 일국의 대사가 광범위한 재량을 갖고 큰 역할을 했는데, 요즘은 통신기술이 발달해서 본부로부터 세세한 지시를 받을 뿐 아니라 총리를 만나 정책에 관한 충고를 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라고 푸념하면서, 21세기 ‘초라한’ 대사 모습에 자조하곤 했다.
그러나 갤브레이스가 델리에서 근무하면서 남긴 인도와 지역 정세, 미국 외교정책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거시적인 혜안, 전략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한 외교활동 기록은 지금도 치열한 외교현장에서 국익을 추구하는 외교관들에게 여전히 의미 있는 교훈이다. 2년 가까이 인도대사로 근무했던 내게도 갤브레이스의 회고록은 인도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호기심, 고민과 열정의 바탕이 됐다. 20세기 외교관이었던 갤브레이스 삶에서 21세기 외교관이 가져야 할 자세를 발견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조현 외교부 제2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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