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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칼럼] 상인적 현실감각을 깨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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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17 23:20:18 수정 : 2017-07-17 23: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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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정책만으로도 난리인데 100대 국정과제 놓곤 조용할까 / 충분히 납득시키고 이해시켜야 이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어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 방침에 동네 사진관이 들고 일어났다.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에 밀려 파리만 날리고 있는 터에 이력서 사진 부착 금지로 증명사진 일감마저 위협받게 되자 “일자리 창출은커녕 있는 일자리마저 빼앗아 가느냐”고 항의하고 있다. 정부는 블라인드 채용이 사진관 영업에 타격을 주리라고는 미처 따져보지 못했겠지만, 설령 알았다고 하더라도 사진관 주인들에게 물어보고 블라인드 채용 정책을 도입할지 말지를 결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블라인드 채용으로 사진관 사장님들이 받을 불이익보다 채용차별 금지와 기회균등 보장이 가져올 능력 중심의 공정한 채용 문화 효과가 훨씬 크다.

정책의 첫째 기준은 공공성이므로 모든 정책을 이해관계자의 뜻을 반영해 만들 수는 없다. 그렇다고 법을 만드는 국회와 정책을 집행하는 정부가 늘 공공성만 앞세워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이해당사자들의 로비를 받고 그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정책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국민 다수의 뜻과 달리 공무원 눈치를 보다 누더기가 됐다. 어린이집 CC(폐쇄회로)TV 설치 의무화는 ‘인권 침해’라고 반발하는 어린이집 교사들의 입김에 휘둘렸다가 “어린이 인권보다 교사들 인권이 더 중요하냐”는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서야 가까스로 국회 문턱을 넘었다. 검찰개혁도 개혁 대상인 검사들 손에 맡겨두었다가 보시다시피 이 모양 이 꼴이 됐다.

김기홍 논설위원
인류는 지구상에 존재한 이래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개혁에 매달렸다. 그 개혁이 모두 성공했더라면 지구촌은 이미 오래전에 지상낙원이 돼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성공한 개혁보다 실패한 개혁이 압도적으로 많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낡은 질서를 뜯어고치는 데 10년, 개혁을 뿌리내리는 데 10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개혁은 성공하기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큰 것이다. 그럼에도 혁명보다 개혁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적법 절차를 밟아 설득과 대화를 통해 지지를 이끌어 내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그래야 낡은 질서를 제대로 깨고 새 질서를 정착시킬 수 있다. 혁명은 하는 것보다 지키기가 어렵지만 개혁은 지키는 것보다 하기가 어렵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높은 지지율에 변함이 없다. 여건이 이렇게 좋은데도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탈원전 정책 같은 국가에너지 정책을 왜 기습작전 하듯 밀어붙여 신뢰를 깎아 먹는지 이해할 수 없다. 국정 설계도인 100대 국정과제가 내일 발표된다. ‘귀신 같은 사람’들이 만든 백년지계인 만큼 어련히 알아서 잘 만들었을까마는 걱정이 없지 않다. 탈원전 정책 하나 갖고도 이 난리가 벌어지고 있는데 100개나 되는 정책을 둘러싸고는 또 어떤 소용돌이가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

박주선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100대 국정과제 대부분은 법 개정과 제정, 국회에서의 예산 심의와 확정 등의 절차를 거쳐야 가능한 과제임에도 국회와 사전 협의 내지는 통보조차 없었다”고 꼬집었다. 참모들과 머리와 어깨를 맞대고 숙의했는지는 모르나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모습은 아직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은 두 달간의 국정기획위를 운영한 소회를 밝히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철학인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언급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국민들에게 이 과제들을 어떻게 납득시키고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라는 얘기다. 김 전 대통령의 설명을 그대로 옮기면 ‘서생적 문제의식’이란 원칙을 중시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서 따지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고, ‘상인적 현실감각’이란 장사하는 사람들이 손님 눈치 보고 돈 버는 궁리를 하듯이 현실 문제를 잘 처리해서 성공하는 것이다. 서생적 문제의식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으므로 ‘상인적 현실감각’을 가지고 성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 대통령에게 ‘법 위의 대통령’ ‘1인 통치시대’라는 말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문 대통령의 발밑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신호다. ‘우리 이니’로 시작하는 ‘문비어천가’에 한눈팔고 있을 때가 아니다.

김기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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