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첫째 기준은 공공성이므로 모든 정책을 이해관계자의 뜻을 반영해 만들 수는 없다. 그렇다고 법을 만드는 국회와 정책을 집행하는 정부가 늘 공공성만 앞세워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이해당사자들의 로비를 받고 그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정책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국민 다수의 뜻과 달리 공무원 눈치를 보다 누더기가 됐다. 어린이집 CC(폐쇄회로)TV 설치 의무화는 ‘인권 침해’라고 반발하는 어린이집 교사들의 입김에 휘둘렸다가 “어린이 인권보다 교사들 인권이 더 중요하냐”는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서야 가까스로 국회 문턱을 넘었다. 검찰개혁도 개혁 대상인 검사들 손에 맡겨두었다가 보시다시피 이 모양 이 꼴이 됐다.
김기홍 논설위원 |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높은 지지율에 변함이 없다. 여건이 이렇게 좋은데도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탈원전 정책 같은 국가에너지 정책을 왜 기습작전 하듯 밀어붙여 신뢰를 깎아 먹는지 이해할 수 없다. 국정 설계도인 100대 국정과제가 내일 발표된다. ‘귀신 같은 사람’들이 만든 백년지계인 만큼 어련히 알아서 잘 만들었을까마는 걱정이 없지 않다. 탈원전 정책 하나 갖고도 이 난리가 벌어지고 있는데 100개나 되는 정책을 둘러싸고는 또 어떤 소용돌이가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
박주선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100대 국정과제 대부분은 법 개정과 제정, 국회에서의 예산 심의와 확정 등의 절차를 거쳐야 가능한 과제임에도 국회와 사전 협의 내지는 통보조차 없었다”고 꼬집었다. 참모들과 머리와 어깨를 맞대고 숙의했는지는 모르나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모습은 아직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은 두 달간의 국정기획위를 운영한 소회를 밝히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철학인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언급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국민들에게 이 과제들을 어떻게 납득시키고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라는 얘기다. 김 전 대통령의 설명을 그대로 옮기면 ‘서생적 문제의식’이란 원칙을 중시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서 따지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고, ‘상인적 현실감각’이란 장사하는 사람들이 손님 눈치 보고 돈 버는 궁리를 하듯이 현실 문제를 잘 처리해서 성공하는 것이다. 서생적 문제의식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으므로 ‘상인적 현실감각’을 가지고 성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 대통령에게 ‘법 위의 대통령’ ‘1인 통치시대’라는 말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문 대통령의 발밑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신호다. ‘우리 이니’로 시작하는 ‘문비어천가’에 한눈팔고 있을 때가 아니다.
김기홍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