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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경찰 수사권 대세 속 검찰이 거듭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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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19 23:58:04 수정 : 2017-07-19 23:5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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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나더라도 검찰은 나 몰라라 / 경찰에 우호적인 수사권 여론은 / 인권 눈감았던 검찰의 자업자득 / 경찰수사 견제로 국민신뢰 얻길 “검사는 국민 세금으로 월급받지 않는가요. 행정공무원이 국가에 손해를 끼치면 불이익을 받는다. 징계를 받는다든지, 구상권 행사를 당한다든지. 검사에게는 수사를 잘못해도 그런 책임이 없다.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데도 아무도 따지지 않고 있다.”

얼마 전 만난 민영진(59) 전 KT&G 사장의 하소연이다. 그는 부하 직원과 협력업체 등에서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으나 1심과 2심, 상고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이 적용한 혐의 5건 중 어느 것도 유죄로 인정되지 않았다. 무죄 확정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그나마 여느 사건에 비하면 아주 짧은 기간이다. 법률적 방어에 들어간 경제적 손실도 손실이지만 땅에 떨어진 위신과 피폐해진 심신은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길이 없다. 

박희준 논설위원
검찰에서는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이가 없다. 가혹행위 같은 불법이 드러나지 않는 이상 형사책임을 질 일이 없다. 무죄판결이 확정됐더라도 도저히 합리성을 인정할 수 없을 정도의 판단만 아니라면 검사에게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도 물을 수 없다. 무죄 판결은 검찰이 유죄를 입증하는 데에 실패했다는 것이지 혐의 자체가 없었음을 뜻하는 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innocent’가 아니라 ‘not guilty’로 드러났을 뿐이라는 것이다.

검찰이 잘못 휘두른 칼은 한 인간의 영혼을 파괴한다. 가정은 풍비박산난다. 검찰 수사를 받고 치욕과 수치심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가 부지기수다. 어렵게 무죄를 선고받았다고 해서 원통함이 풀릴까. 검찰이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면 그저 보고만 있을 순 없었을 것이다. 수사 개시가 정당했는지, 무리한 기소는 아니었는지 검증하고, 잘못이 있었다면 사과하고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일본 검찰은 사건 처리결과에 대해 책임을 철저하게 묻는다고 한다. 수사 과정상 가혹행위나 증거 조작, 은닉행위가 있었다면 구속수사 등 엄정한 조치를 취한다. 동경지검 특수부 수사에 참여한 검사가 피의자에게 벽을 보게 서도록 한 뒤 고함을 지르는 등 가혹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사례도 있다.

검사들은 개인의 운명을 좌우할 수사에서 천근만근의 중압감을 느껴야 한다. 잘못해서 구속하고 기소해 무죄가 날 경우 엄중한 책임 추궁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51%의 유죄 심증만으로도 기소하는 횡포를 막을 수 있다. 무죄로 나올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과감히 기소를 포기하는 게 옳다.

KT&G가 왜 타깃이 됐는지 짐작할 만한 정황이 지난해 국정농단 특별검사 수사과정에서 드러났다.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최씨 가방에서 발견해 찍은 문건 사진이 확보된 것이다. 우리은행장과 경찰청장, KT&G 사장 후보의 인사자료와 ‘민정수석실’이라고 적힌 메모가 확인됐다. 최씨가 KT&G 사장 자리에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검찰도 할 말이야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하명수사’의 도구로 쓰인 셈이다.

얼마 전 오세인 전 광주고검장이 검찰을 떠나면서 남긴 말이 귓전에 맴돈다. 그는 “만약 검찰이 시장에서 동등한 기능을 수행하는 다수의 경쟁자를 가진 사기업이었다면 벌써 존립의 기반을 잃었을 것”이라고 했다. 눈치 빠른 경찰이 ‘인권 경찰’을 내세워 수사권 이양을 기다리고 있다. 시위대가 서울 도심 차로를 행진하는 것도, 성주 주민들이 사드부지 출입차량을 무단검색하는 것도 눈 질끈 감는 걸 보니 조직의 사활을 건 듯하다.

여론은 경찰 쪽으로 기울고 있다. 검찰의 자업자득이다. 경찰이 미덥지는 않지만 수사권을 경찰에 줘서라도 막강한 검찰을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부터 공직자비리수사처 설립과 함께 검경 수사권 조정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임을 공언했다.

문무일 검찰총장 후보자도 후보 지명 직후 “국민 권익과 인권을 위해 검찰 개혁에 관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 내는 데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만시지탄이다. 앞으로 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가더라도 ‘인권 검찰’로 거듭날 기회는 있다. 수사지휘권과 기소권을 통해 경찰의 잘못된 수사를 견제하고 바로잡는 일이다. 검찰이 국민 신뢰를 회복할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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