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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그들은 왜 입을 닫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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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20 21:26:54 수정 : 2017-07-20 21: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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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운명 정하는 국무회의서
새 정부 장관들 벙어리 신세
반대 의견에 마음 열지 못하면
소통도 통합도 실패할 것
한심하다. ‘소통 정부’에서 기본적인 소통조차 없었다니!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첫 국무회의에서 8조원짜리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 중단 문제가 긴급안건으로 올라왔을 때의 일이다. 대다수 국무위원은 꿀 먹은 벙어리였고 안건은 일사천리로 통과됐다고 한다. 국무위원 18명 중에서 의견을 개진한 사람은 해양수산부 장관 1명뿐이었다. 17명의 장관이 아예 입을 봉했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일전에 비서진에게 “대통령 지시에 이견을 제시하는 것은 의무”라고 말했다. 유독 소통을 강조한 새 정부에서 어떻게 장관들이 하나같이 입을 닫는 일이 발생했을까. 아마 장관들이 대통령의 입보다 의중을 더 헤아린 탓이 아닐까.


배연국 논설실장
굳이 소통이론의 한 자락을 옮기자면 이렇다. 의사소통에서 말이 차지하는 비중은 기껏 10% 정도라고 한다. 얼굴 표정, 음성, 제스처, 자세 등 비언어적 신호를 통해 정보의 90%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상대가 드러내는 표정이나 눈빛만으로도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감지능력이 떨어지면 눈치 없다는 핀잔을 듣게 된다. 척 하면 무슨 소린지 아는 ‘눈치 9단’의 장관들이 대통령의 이런 낌새를 못 알아챌 리 있겠는가.

탈원전은 대통령이 최근 다소 유연한 입장으로 돌아섰다지만 국정철학이 실린 사안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노후 원전 폐쇄 등을 통해 40년 후 ‘원전 제로’ 국가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취임 후 탈핵을 선언하고 신고리 5·6호기의 운명을 시민배심원단에 맡기겠다는 방침은 그 후속편에 불과하다.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가 12대 1로 안건을 기습처리한 것도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히 읽은 까닭이다.

원전에 대한 생각은 각자 다를 수 있다. 그것의 찬반을 일단 제쳐두기로 하자. 하지만 적어도 논의의 전개 방식이 일방통행이라면 소통이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말아야 한다. 소통은 ‘쌍방 통행’과 ‘다른 생각’이란 두 가지가 전제될 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초록동색의 사람끼리 주고받는 말은 동어 반복이지 소통이 아니다. 더구나 윗분의 의견이 강요되고 눈치까지 판치는 풍토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소통에서 중요한 것은 양보다 질이다. 통신수단이 발달하고 정보가 범람한다고 해서 소통이 원활해졌다고 여기면 오산이다. 아무리 이메일과 메시지가 빠르게 오가더라도 마음의 교통이 없으면 진정한 소통과는 거리가 멀다.

소통은 ‘마음의 문’을 여는 데서 시작한다. 한자말 소(疏)는 트인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통(通)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막힌 것이 뚫려야 한다. 통보다는 소가 우선이라는 뜻이다. 내 마음이 열려 있어야 그것이 상대에게 전달되고 상대의 마음이 내 마음으로 들어올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은 이런 원리를 깨우친 소통의 대가였다. 그는 조정대신, 부하, 친지들과 자주 의견을 나누었다. 소통의 도구는 장계, 서간, 시문이었다. 그는 편지 말미에 통상적으로 쓰는 배(拜)나 배상(拜上)을 쓰지 않고 반드시 ‘이순신 소(疏)’라고 적었다. 그가 얼마나 소통을 중시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평소 이런 소통 활동이 없었다면 억울하게 옥에 갇혔을 때 그의 구명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조정 대신이 과연 얼마나 되었겠는가. 결국 감옥에서 나온 장군은 13척의 배로 왜군 함대를 무찌른다. 장군에게 최후의 비밀병기는 우리가 아는 거북선이 아니다. 탁월한 소통능력이 바로 14번째 전함이다. 그것이 있었기에 나라를 구하는 구국의 영웅이 될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처한 국가적 위기를 헤쳐나가려면 국민통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찢어진 국론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선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상대의 마음을 여는 소통은 국가의 에너지를 결집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소통이 왜곡되고 한쪽으로 쏠리면 국론은 반드시 찢어질 것이다.

마음을 닫고 자기주장만 밀어붙여선 안 된다. 그것을 소통이라고 우기지 마라. 끝내 깨닫지 못한다면 정부가 ‘소통’이라고 써도 국민은 ‘불통’으로 읽을 것이다.

배연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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